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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노무현에게 KO승 거두다

이명박은 정동영에게 이긴 것이 아니다.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이긴 것이다. 그리고 정동영이 진 것이 아니다. 노무현이 진 것이다. 이것이 17대 대선 결과의 의미이다.

요즈음 송년회 자리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선거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가는 곳마다 이명박 이야기를 많이들 했다. 그러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은 안찍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동영 이름은 별로 안나왔다. 한결같이 '노무현' 이름을 들먹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장

이번 대선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잘사는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들대로, 못사는 사람들은 못사는 사람들대로 '노무현'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가득했다.

잘사는 사람들은 종부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내 집 하나 갖고 살아온 사람에게 수백만원씩 종부세를 때리는 정권이 강도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종부세 신고와 납입 마감일이 선거일 바로 이틀 전이었다.

6억 이하의 집에 사는 사람들도 생활이 어려운 이유를 '노무현'에게서 찾았다. 은행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던 사람은 치솟는 대출금리에도 나몰라라하는 정부를 원망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건물주인이 종부세 때문에 임대료를 올려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저것 나가는 세금이 너무 많다며 높은 세금을 성토했다. 연말 들어 경기가 다시 안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왔다.

그런가 하면 휘발유값 급등, 최근의 물가인상 움직임도 모두 노무현 정부 탓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갈수록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생활의 어려움을 모두 '노무현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 대통령이 들으면 정말 억울해할 이야기들도 많다.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과 감정이 폭발

그러나 그만큼 감정이 쌓여왔던 것이다. 백성들은 살기가 어렵고 피곤해있는데, 거시지표만 들이대며 참여정부의 성공담을 말하고 있는 대통령이 미웠던 것이다. 가만히만 있으면 그래도 덜할텐데, 자꾸 약을 올리며 속을 뒤집어놓고 있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래서 '19일'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BBK고 뭐고 간에, 그리고 이명박이 잘할지 어떨지도 모르지만, 일단 정권교체는 꼭 해야한다는 생각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민심은 이미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것이 선거를 통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사실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는, 노무현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범여권에서 정동영이 아니라 다른 누가 나왔어도 도리가 없었을 상황이었다. 아마 이명박이 신당 후보로 나왔다해도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선거 직전까지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 대못을 빼낼 것이 확실한 상황인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대못질을 하는 오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들이 추진한 주요정책들을 다음 정부가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었다. 마치 정책에 대해서도 대못질을 해두려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악화된 민심을 더 멀리 가버리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정권교체기, 몸을 낮추는 모습 보여야

이명박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대선결과를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정동영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의식하며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람이다.

그동안 노 대통령이 수없이 꺼냈던 '참여정부 예찬'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심은 이렇게까지 돌아서있다는 사실을 노 대통령이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혹여라도 "내가 후보가 아니었는데, 정동영 탓이지 왜 내 탓이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노 대통령이 이제라도 민심의 현주소를 제대로 읽었다면, 정권교체기동안 순리에 맞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퇴임하는 날까지는 내가 대통령이니까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다시 여러 가지가 복잡해진다. 과거 퇴임하는 대통령들이 그러했듯이, 이제 정권이 바뀌게 된 현실을 인정하고 무리없이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노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적대적 발언을 여러차례 해왔다. 청와대가 이명박 후보를 직접 고소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노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자를 겨냥하여 검찰의 BBK 재수사를 사실상 지시하기도 했다. '이명박 특검법' 수용 입장도 신속하게 밝힌 상태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여러 가지로 꼬여있을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과정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당선자와 현직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는 일은 없을지, 정권 인수인계 작업은 차질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여러 신경이 쓰인다.

일단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이다.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존중한다면, 이제는 물러나는 위치임을 인식하고 몸을 낮추는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하여 정권교체기에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이 생겨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이 사실상 '이명박 대 노무현'의 대결이었고, 그 대결에서 이명박이 승리한 것이라면, 패자가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상식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따로 하더라도, 일단 기본은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