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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무너진 방송, 체념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방송들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고.

그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1년도 되지않아 방송사들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촛불정국에서 탈출한 이명박 정부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송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이후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다각적인 움직임들이 계속되었다.

물론 방송인들은 정권의 방송장악 기도에 저항했지만, 권력을 가진 상대와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정권은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채 대리인들을 내세우며 뒤에서 그 과정을 즐겼다.

어려운 과정이었다. 각 방송사의 많은 구성원들과 언론노조가 그에 맞서 싸웠지만 상황은 계속 후퇴하였다. YTN 해직기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헤매고 있으며 내부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장기간에 걸친 YTN의 투쟁은 구성원들을 많이 지치게 만들었다.

미디어행동과 KBS 해고 비정규직 사원들의 집회 ⓒ 남소연

KBS의 사정도 무척 힘들어 보인다. 이병순 사장이 들어선 이래 KBS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KBS의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은 맛이 가버렸다. 이병순 체제의 부당한 조치들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태도를 바꾸는 노조를 가진 탓에 내부의 힘은 제대로 모아지지 못했다. KBS 구성원들의 절대적인 불신을 받고 있는 이병순 사장이 감히 연임을 노리고 있는 장면이 오늘 KBS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MBC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엄기영 사장의 사퇴라는 고비는 일단 넘겼지만, 그 이후 MBC의 뒷걸음질도 눈에 띄고 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어떻게든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는 모습이 눈에 띄고,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현저히 비중이 축소되었다. MBC에 대한 정권과 방문진의 압박도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많이들 지친 표정들이다.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느라고 싸웠지만, 권력을 가진 쪽이 마음먹고 그렇게 하겠다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가에는 체념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기자들은 어느 사이 자기검열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뉴스 한 꼭지를 제대로 넣기 위해 데스크와 다툼을 불사하던 기자들이 어느덧 스스로 알아서 빼는 자기검열에 젖어들고 있다는 고백이 나오고 있다. 어차피 취재해 보아야 나가기 어려운데그래서인가. 요즘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에는 취재나온 기자들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뉴스 편집을 하는데도 기계적인 중립을 맞추느라, 정작 무엇이 핵심인가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5공 시대의 기자들이 그랬었다.

PD들이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도 사정은 악화되고 있다. PD들이 만드는 시사프로그램들은 폐지되거나 연성화되는 추세이고, MBC <PD수첩> 정도만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제작현장에서 PD들의 목소리도 많이 위축된 듯하다. KBS의 시사 프로그램들에서 코드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출연봉쇄가 계속되어도, 이런 부당한 조치에 대해 맞섰다는 PD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권력에 맞서서 오랜 시간동안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으로서의 방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벅찬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 후를 내다보자. 국민의 뜻에 따라 방송장악의 성이 다시 무너졌을 때, 지금 방송사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오늘을 증언할 것인가. 그 때 나는 방송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노라고 부끄럽지 않게 자식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피곤하고 지치기는 하지만 절망할 일은 전혀 아니다. 지금 당장은 권력을 가진 쪽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못함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시대를 거스르고 민심에 역행하는 권력의 통제는 이미 그 수명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은 국민의 뜻에 의해 무너지게 되어있다.

우리 방송현실이 가장 절망적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변화을 위한 움직임은 시작되게 된다. 그것은 국민의 힘이 뒷받침되면서 만들어진다.

KBS가 새 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KBS에서 또 다시 낙하산 사장이 들어서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 물론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지치지않고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대한민국 방송사는 자랑스럽게 기록할 것이다. 그들의 분투를 성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