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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KBS 라디오 PD들의 수난을 지켜보며

지금은 퇴출당해 1년이 넘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오랫동안 KBS 라디오에 출연했었다. 특히 KBS 1라디오가 시사전문 채널이 된 2003년 무렵부터 1라디오의 여러 시사프로그램들에 고정 출연하면서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하곤 했다. 그 밖에도 KBS의 2라디오나 한민족방송, 국제방송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KBS를 드나들며 라디오방송을 했다.

그 때 좋은 시사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같이 방송을 했던 좋은 라디오 PD들이 많았다. 여기서 이름을 거명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도 생각나는 좋은 PD들이 KBS 라디오에는 넘쳐났다. 그들은 (정권이 아닌)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시사방송을 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PD들과 함께 방송을 했던 때가 가장 보람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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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그런데 이 기억이 이미 아득한 시절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지난 1~2년 사이에 너무도 많이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 1라디오 등에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었던 PD들은 대부분 음악 프로그램이나 전혀 다른 업무로 인사발령이 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한마디로 요주의 인물들에게는 시사프로그램을 맡기지 않겠다는 사측의 조치였다. 그런가 하면 그 무렵 KBS 라디오에 출연하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해주던 여러 출연자들도 이제는 KBS 라디오에서 만나기가 어렵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사측의 원천봉쇄 조치였다.

불과 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KBS의 라디오 PD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느닷없는 봉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KBS 사측이 라디오 PD들의 지방발령을 위한 지방순환 기준 개정을 강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KBS는 지난 달부터 직종별 순환전보 기준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다른 직종과 달리 라디오본부 소속 PD들만 '타부서 근무시 지역근무 적용'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해 라디오 PD들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이는 KBS 새 노조에 대거 참여하고 있는 라디오 PD들을 지방근무로 찢어놓아 결국 새 노조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KBS 라디오 PD들은 그동안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 폐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도 하고, 새 노조에도 절대 다수가 참여해왔다. 그래서 사측은 이들을 지방으로 발령내서 라디오 PD들의 응집력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를 통제의 수단으로 삼거나 보복의 무기로 이용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노사관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다른 곳도 아닌 공영방송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장면은 지금 KBS의 현주소가 어떠한 것인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보사장 체제에 대한 내부적 비판의 싹을 다 잘라버리겠다는 것이다. 김인규 사장이 그렇게 찬양했던 전두환 시절의 KBS와 무엇이 다른가.

이에 KBS 새 노조는 "순환전보 개정안이 새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라며 "사측이 기어이 새 노조에 대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또한 전면전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금 KBS에서는 이런 일이 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아시고, KBS 새 노조와 라디오 PD들에게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다음은 KBS 새 노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서이다.

보복인사 앞장서는 라디오본부장 물러나라

사측이 직종별 순환전보 기준 개정을 기어이 밀어붙일 태세다. 우리는 이미 '지역라디오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사측이 작업 중인 순환전보 기준 개정의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한 바 있다. 특히 정상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전혀 밟은 적이 없으면서도 '라디오본부 의견 반영'이라며 허위로 개정안을 작성한 인사들은 더 이상 간부의 자격이 없다고 천명했다.

그럼에도 끝내 사측이 이번 개정안을 밀어붙이겠다면 이는 새 노조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사측의 순환전보 개정안이 새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측이 기어이 새 노조에 대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또한 전면전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새노조가 어떤 조직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우리는 온몸으로 보여줄 준비가 얼마든지 되어 있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소속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라디오PD 순환전보 개정안을 추진한 라디오본부장의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라디오PD들의 지역발령 추진은 마음에 들지 않는 라디오PD와 특보사장에 비판적인 새 노조에 대한 보복성 인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라디오본부 PD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내 일방적인 라디오PD의 지역발령을 강행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라디오본부장 퇴진운동을 전면적으로 펼칠 것이다. 라디오본부장과 함께 순환전보 개정을 밀어붙이는 라디오본부 간부들 또한 결코 무사할 수는 없음을 명심하라.

사측은 지금이라도 당장 순환전보 개정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라디오PD들과 함께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라. 진정 '지역라디오 활성화'를 바란다면 인사권으로 구성원들을 협박하는 등의 꼼수는 깨끗하게 접고 허심탄회하게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하라. 그렇다면 KBS본부 역시 얼마든지 사측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사측이 끝까지 우리를 손보겠다면 우리의 칼끝은 라디오본부장을 넘어 특보사장을 정확하게 겨누게 될 것이다.

2010년 3월 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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