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개원협상을 타결지으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를 전격 합의하여 발표했다. 두 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과 관련해 두 의원의 자격심사안을 각 당 15명씩 공동으로 발의하고, 이를 본회의에서 조속히 처리키로 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자격심사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민주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를 수용한 것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따른 부담을 털고가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당의 이번 합의는 여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합의. (사진=남소연)
첫째, 두 당이 다른 정당 소속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고 제명의 칼을 빼들려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하는 점이다. 소속 정당의 공천과 유권자의 선택을 거쳐 선출된 국회의원을 다른 정당이 자격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선거제도를 부정하는 일이다. 더욱이 두 의원이 부정경선에 대해 책임이 있는지 여부조차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당사자인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도 경선부정 문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당이 “비례대표 후보자의 선정과 그 순위의 확정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두 의원의 신상과 거취에 관한 문제는 어떤 결과가 되든, 기본적으로 통합진보당에 맡길 일이다.
둘째, 민주당의 합의는 새누리당의 종북검증론을 사실상 받아들인 셈이다. 두 당은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가 부정경선 문제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의도가 ‘종북 의원’ 제명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이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국가관’ 발언을 통해서도 이미 드러난 바이다. 다만 종북을 이유로 해서 자격심사를 추진하려니 문제삼을 종북적 ‘팩트’가 없고 민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없기에 부정경선 문제로 포장한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모를리 없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를 덥썩 수용한 것은 여당의 종북검증을 인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째,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이런 식이면 두 당에는 과연 자격심사를 받을 의원이 없겠는가. 이미 민주당 대표경선에서도 이중투표 사례가 발견되어 논란을 빚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우리 정당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지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내부 경선도 그렇게 모범적으로만 치러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 역시 통합진보당 경선을 다루듯이 먼지털이식의 조사나 수사를 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당들의 경선관리에 여러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두 정당은 통합진보당과 동일한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고 그 결과에 대해 역시 자격심사를 자청할 자세가 되어있는가. 여야의 두 다수당이 소수 진보정당만 때려잡는 횡포를 부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두 의원 이전에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형태, 문대성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부터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우선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자격심사의 대상을 골라서는 안된다.
넷째, 앞으로 국회에서 다수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의원의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악선례가 될 것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자격심사가 있게 된다면 40년만의 일이 된다. 그동안 사문화되었던 자격심사가 무덤에서 살아나는 것이다. 다수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원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자격심사를 할 수 있는 선례가 생겨나는 셈이다.
문제는 국회법에서 자격심사의 청구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회법 제138조에는 “의원이 다른 의원의 자격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때에는 30인 이상의 연서로 자격심사를 의장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다른 의원의 자격에 대해 이의가 있는 경우를 찾자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발의요건만 갖추면 앞으로 그런 이의를 다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인가.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합의는 두 거대정당의 담합적 횡포이다. 이에 합의한 박지원 원대대표 또한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하여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박 원내대표 또한 다른 의원들의 ‘이의’ 때문에 자격심사 대상이 되지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새누리당은, 특히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정치적 잣대를 앞세운 자격심사 합의를 거두어들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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