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FM '황정민의 FM 대행진'을 맡고 있는 황정민 아나운서가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안타까운 마음과 걱정으로 방송을 했는데,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생방송에서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다”고 말을 했습니다.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실망스럽다는 용어를 사용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황정민 아나운서, "촛불 시위 폭력적이다"> 라고 발언한 듯이 보도를 한 일부 기사로 인해, 마치 제가 촛불집회 전체가 폭력시위로 변질되었고 이제 촛불집회 자체가 실망이다 라고 말을 한 것처럼 오해하고 계신 청취자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촛불집회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뭐라 더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제 본의는 어제 집회의 양상이 안타깝고 걱정스러워 드린 말씀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며 , 정부가 고시를 생각보다 빨리 게재한 일과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문제 있음을 지적했다는 점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공영방송의 아나운서로서 보다 더 신중하게 방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송 오프닝에서 한 말에 대해 항의가 잇따르자 머리숙여 사과를 한 것이다. 특히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다”는 부분이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황정민이 했던 말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뒤 말도 함께 알 필요가 있다.
“어젯밤...시위대와 경찰이 다시 격렬하게 충돌했다죠?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물대포가 사용되고..
국회의원, 초등학생, 취재기자까지 포함..
백명 이상이 연행됐어요...
국민들이 안심할때까지 고시를 연기하겠다더니....
생각했던것 보다 빨리 일이 진행되죠?
그 때문에 시위대가 흥분했는데요..
경찰의 물대포야..뭐 기대한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은...많이 실망스러웠어요..
새로운 시위문화다 뭐다..보도했던 외신들..
이제 다시..“그럼 그렇지..” 하지 않을까요?
고시를 늦추는게
득보다는 실이 많을것 같다는 판단..!
과연..누구에게 득이 된다는 걸까요?
정부에, 나라에, 아니면..국민에게...? 지켜볼 일이죠...
6월 26일 목요일, 황정민의 FM 대행진이에요....”
황정민이 했던 말 전체를 놓고 보면, 도대체 이 말이 사과까지 할 말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만 뭐라한 것이 아니다. 고시를 강행한 정부를 향해서도 누구에게 득이 된다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물대포를 쏜 경찰에 대해서는 애당초 기대한 것이 없었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정부도 탓하고 그랬지만, ‘시위대의 과격한 모습’을 가리켜 ‘실망스러웠다’고 하는 것은 금단의 영역이었을까.
지난 25일 밤부터 26일 새벽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일부 시위대의 과격행동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촛불시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오던 <한겨레>나 <경향신문>까지도 일부 참가자들의 폭력행동에 대한 우려를 표했을 정도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은 따로 하더라도, 일단 일부 시위자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참가자들의 그러한 행동이 촛불시위에 대한 전체 시민들의 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를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오히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촛불시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러한 성찰을 더 엄격하게 해야 할 상황이다. 그것이 ‘일부’였느냐 ‘전체’였느냐를 굳이 따지기 이전에 함께 자성하고 바로잡을 일이다.
이런 마당에, 시위대의 과격한 모습에 실망했다는 말에 발끈해서 사과를 요구하고 끝내 사과를 받아내는 모습 또한 실망스럽다. 그 정도의 말도 할 수 없단 말인가.
사회적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은 다르고 다양하다.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생각만 강요할 수는 없다.
촛불시위도 마찬가지이다. 촛불시위의 시작은 범국민적인 공감대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제 앞으로의 목표나 방식 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과 판단들이 있을 수 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 그리고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의 의견까지 들으며 앞으로의 문제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애당초 평화적인 촛불집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던 황정민 같은 사람의 쓴소리를 약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을 대할 때 가장 답답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좌우 이분법의 세계관에 갇혀있는 극우적 사고의 소유자들과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나 토론이 불가능함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 진보를 내걸고 반(反)이명박을 내건 사람들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성적인 토론이나 자기에 대한 비판을 거부한다면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닐까. 민주주의를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자기 자신들이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황정민이 자신의 생각을 접어두고 머리숙여 사과한 장면이 어쩐지 슬프다. 촛불시위가 '완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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