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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이병순 사장, '부적격 진행자' 또 조사한다

변희재 대표가 발행하는 보수성향 미디어비평지인 <미디어워치>라는 매체가 있다. 그런데 이번 호를 보니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이여영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여영씨는 <중앙일보>에서 계약직 기자로 일하다가 촛불정국 당시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를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해고된 전직 기자이다. 현재는 자신의 블로그에 주로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글을 올리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나도 그녀의 블로그에 방문한 적이 여러 차례 있기에, 어떤 취향의 전직 기자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런 이여영씨가 느닷없이 KBS 시청자 위원회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여영씨는 이달 초부터 KBS 보도국 인터넷 뉴스팀의 인터넷 전용 프로그램 '이여영의 아지트' 진행을 맡았다. 그런데 그녀를 기용한 것이 논란거리가 된 것이다.

<미디어워치>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지난 15일 열린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이문원 위원이 이여영씨의 진행자 발탁 이유에 대해 의견서를 제시했고, KBS측이 답변에 나섰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문원 위원은 <미디어워치>의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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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KBS 사장

답변에 나선 KBS 고대영 보도국장은 "이여영씨는 이전에 KBS 라디오에서 섹션을 맡은 일도 있고, KBS 인터넷 '차정인의 세상읽기'에 게스트로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면서 "그런 관계로 해당 팀에서 이여영씨를 발굴해 프로그램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여영씨의 배경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미디어워치>는 보도하고 있다. 이어서 고 국장은 "'이여영의 아지트'는 라이프 스타일 관련 프로그램이므로 이여영씨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답변에 대해 이병순 사장이 직접 제동을 걸었나보다. 이병순 사장은 고대영 국장의 답변에 대해 "충분한 답변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발탁 경위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적절한 답이 아니었다고'고 지적하며, 고 국장에게 이여영씨가 절차적으로 합당한 과정을 거쳐 발탁된 것인지 묻고, "만약 KBS에 적합지 못한 인물이 발탁됐다면, 이를 엄격히 조사해서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보도국장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관한 KBS 측의 답변은 11월 정례 회의 때 재보고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두가지 사실에 놀랐다.

우선 촛불정국에서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고 그로 인해 해고당한 전력이 KBS 인터넷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부적합한 것처럼 공공연히 논의되는 점이 놀랍다. 더욱이 이여영씨가 맡은 프로그램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트랜드를 솔직하고 당돌하게 접근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리고 도덕적으로 떳떳한 전력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김제동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보았기 때문에 KBS가 문제삼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병순 사장의 강경한 태도이다. 이번 시청자위원회가 열린 때는 김제동씨 퇴출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확산되던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이병순 사장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이여영씨 문제에 대해 엄격한 조사와 엄정한 조치를 지시했다. 보도국장의 우회적인 답변을 제지하면서까지 말이다. 한마디로 촛불시위에 동조하다가 <중앙일보>에서 해직된 사람을 어떻게 KBS에서 쓰게 되었는지,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조사가 끝나면 다시 중도 하차의 칼을 집어들지 모르겠다.

인터넷 프로그램 진행자의 문제될 것 없는 전력 하나로 사장이 직접 나서서 그같은 지시를 하는 것을 보니, KBS에서는 이병순 사장이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다 개입한다는 소문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 이병순 사장이 김제동씨 문제에 대해 자신은 몰랐고, 나중에야 보고받았다고 하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KBS에서 이여영씨 진행자 기용과정에 대해서도 조사와 조치에 들어간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김제동씨 퇴출로 인해 그렇게 사회적 여론이 들끓었는데도 이병순 사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다.  KBS의 말대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프로그램에도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KBS의 모습은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와도 같다. 전두환 정권 때인들, KBS가 이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