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손학규를 앞서기 시작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9.8%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9.4%를 근소하게 앞섰다. 물론 오차범위 이내의 미미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 이사장이 야권 선두주자에 오른 것은 처음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 출간 이후 향후 대선 도전 가능성이 관심을 끌면서 문 이사장의 지지율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손학규 대표의 지지율이 4.27 재보선 직후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비되며, 야권 진영에서 손학규-문재인의 양강구도 형성이라는 전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현재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문재인은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의 핵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손학규 지지율 하락, 중도노선의 자업자득
우선 손학규 대표가 드러내고 있는 한계이다. 손 대표는 지난 4.27 재보선에서 분당을에 출마하는 등 몸을 던져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선주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가능성 따라 여야를 넘나들었다는 원죄를 안고 있는 그에게 몸을 던지는 모습보다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 (사진=이종호)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 대표는 고유의 ‘중도노선’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야권 주자들 가운데 중도층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인물은 손학규이며, 이를 위해서는 중도노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잘못된 판단이 스스로의 발목을 다시 잡아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손 대표는 4.27 재보선 승리를 통해 잠시나마 손에 쥐었던 정국주도권을 그냥 바라만보다가 다시 여권에 반납하는 선택을 했다. 그가 이끄는 민주당은 정국의 쟁점을 선도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4.27 재보선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을 확인시켜주었지만, 정작 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은 그 민심의 열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손 대표 지지율 하락의 의미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을 분석해보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손 대표 지지에서 이탈하고 있는 층은 연령적으로는 주로 20~30대 젊은층, 지역적으로는 호남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다는 말이고, 이는 지지율의 일시적인 하락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손 대표의 중도노선에 대한 야권 전통적 지지층의 불만과 실망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손 대표가 야권 전통적 지지층의 마음을 잡지못하는한, 어느날 갑자기 ‘손학규 바람’이 불어 박근혜-손학규 대결이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야권의 열성적 지지층이 먼저 움직이고 거기에 중도층의 지지가 더해져야 대선 승리가 가능한 것인데, 중도노선에 매달리는 손 대표에게 야권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눈길을 주는 일은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의 치명적인 오류는 먼저 야권 지지층의 신뢰회복을 이루고 그 이후에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거꾸로 중도층에 매달리다가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예선도 통과못한 사람이 본선준비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손 대표 진영에서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중도노선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손 대표는 ‘예선 탈락’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손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야권 전통적 지지층의 마음을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지지율 답보가 해결책이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학규는 여기까지’라는 회의적 시선은 ‘손학규 필패론’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손 대표 진영은 과소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의 확장성에 대한 기대
그러면 문재인은 어떠한가. 문 이사장의 기본적인 한계는 대중정치인으로서, 정치리더로서 아직 검증받지 못했다는 점이 될 것이다. 그가 만약 정치에 뛰어들 경우 실제적인 활동을 지켜본 국민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문재인 이사장 (사진=권우성)
그럼에도 문 이사장은 손 대표가 놓치고 있는 여러 항목들에 대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야권 대선주자로서의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집토끼’와 ‘산토끼’를 함께 잡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문 이사장은 야권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을 낳을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의 동지였던 그는 이른바 친노세력의 대표성을 사실상 갖고 있는 위치에 있다. 거기에 다양한 야권내 지지층으로부터 특별한 비토없이 상대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드문 경우이다. 손 대표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젊은층과 호남지역이 문 이사장의 주요 지지기반이 되고 있는 현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야권세력이 대선승리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권 지지층으로 하여금 체념과 필패의 정서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갖고 결집하도록 하는 대안을 찾는 일이다. 우선은 열성적 지지층이 형성되고 이들이 움직여야 확장성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문 이사장은 바로 이 대목에서 상당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문 이사장의 잠재적 파괴력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어떤 근거일까. 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비토층이 적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인물임에도 노무현 비토자들조차도 문재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정치적 이념이나 정파적 입장같은 것 이전에 그의 강직함, 신뢰성, 절제력, 사심없는 모습 등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이 그의 잠재적 파괴력을 기대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의 확장성은 의도적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미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손학규 대표의 경우 지지율의 상한선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태라는 인식이 ‘손학규 바람’의 등장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반면에 문재인 이사장 경우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상승세를 탈 경우 여러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바람’의 기대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손학규-문재인의 맞대결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두 사람은 물론이고 야권 전체의 입장에서 판을 키우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론 이 판은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야권 주자들의 참여 속에서 더욱 키워질 수 있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되든, 혹은 다른 3의 인물이 되든, 페어플레이와 깨끗한 승복이 있으면 된다. 이렇게 야권 단일후보 선출과정과 손학규-문재인 빅매치가 맞물릴 경우 상당한 파괴력이 예상되며 대선지형 자체의 의미있는 변화를 내다볼 수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여전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2012년 12월의 결과를 아직 예단할 수 없는 이유이다. 대통령선거에서 1년 4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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