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결국 사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았던 정권의 실세였다. MB 코드에 따른 그의 방송정책을 둘러싸고 방송계와 야권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이 계속되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종편 채널의 출범과 그에 대한 특혜 논란,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 이후 불거진 방송장악 논란, 방송사의 낙하산 사장 논란의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최시중 방통위는 SNS까지도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사진=유성호)
최 위원장은 MB의 소통부재, 불도저식 일처리를 꼭 빼어닮았던 인물이다. 그는 마지막 사퇴 기자회견에서조차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 조직 전체가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저로 인해 방통위 조직 전체가 외부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당하거나, 스마트 혁명을 이끌고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킬 주요 정책들이 발목을 잡혀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서는 억울함의 심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회견 도중 그는 네 차례나 울먹였다고 한다. 도대체 자신이 왜 퇴진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는지, 조금도 돌아보지 않는 성찰부재의 모습이었다. MB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최 위원장은 "저의 퇴임이 방통위에 대한 외부의 '편견'과 '오해'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편견’과 ‘오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그의 자세가 무척 못마땅하지만, 그의 퇴진은 분명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 도약의 의미가 최 위원장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겠지만 말이다.
최 위원장의 사퇴로 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그는 물러났어도 그가 남긴 해독은 방송계 안팎에 깊게 남아있다. 이제 방송장악의 주역이 물러난 마당에, 당연히 그가 끼친 해독을 풀어내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 그리하여 과거로 뒷걸음질쳤던 우리 방송계의 시계를 원상태로 돌려놔야 한다.
우선 종편 특혜 정책이 철회되어야 한다. 최 위원장은 야권의 반대와 국민의 우려 속에서도 종편 탄생을 밀어붙인 주역이었다. 그러나 종편 출범 몇 달도 되지않아 우려했던 폐해는 현실이 되고 있다. 조중동에 기반한 종편 채널들은 ‘여론의 다양성’이라는 출범 명분조차 팽개친채 노골적인 보수편향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시청자의 외면 속에서 애국가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도 종편 채널 광고를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 위원장이 권언유착의 구조 속에서 밀어붙인 종편 출범은 현재로서는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종편 특혜 정책을 중단하고 종편 채널에 대한 근본적 판단을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 위원장이 배경으로 자리했던 방송장악의 현실 또한 바로잡혀야 한다. 낙하산 인사 시비를 낳았던 MB측근 인사들은 방송사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고, 그에 맞섰던 해직.징계 방송인들은 원래의 자리로 원상복귀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방송출연을 정상적으로 못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해금조치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 위원장은 재임중 자신이 남긴 공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우리 방송계에 남긴 그늘은 너무 깊고 넓다. 이제 그 그늘을 거두어 내고 우리 방송계의 현실을 바로잡는데 적지않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최 위원장이 물러났다고 해서 청와대가 이같은 현실을 바라만보고 있는다면 직무유기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 위원장이 벌린 일들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뜻과 다르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멘토가 물러난 상황에서 우리 방송계의 현실을 원상회복시키는 책임은 이제 이 대통령에게 있다. 이 대통령은 최시중 방통위 시절에 방송의 자율성을 파괴하고 방송장악을 시도했던데 대해 사과하고, 이제 국민의 방송민주화 요구를 수용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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