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오히려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양대 권력기관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대선에 개입했던 국기문란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으니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여론조작 지시를 내렸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박근혜 후보를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심야에 발표하도록 했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여론조작 활동에 가담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다는 이유로 선고유예 처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는 면죄부를 발급받았다. 특히 김용판 전 청장의 배후에 또 다른 몸통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들의 윗선에 대한 수사는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의 선거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이 사건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행위인가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수사결과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많은 국민과 언론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대선 무효 혹은 박근혜 대통령 사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이 지난 18대 대선 결과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주장들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그러한 요구가 실현되기는 쉽지않아 보인다. 우선 선거 무효 문제와 관련해서는 무효 소송을 할 수 있는 시한이 이미 지나버린 상태이다. 이 사건의 진상이 투표일 이전에 있는 그대로 밝혀졌다면 대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추론도 가능하지만, 반대로 그 영향이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득표를 뒤집었을 것임을 입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의식하여 대통령직을 스스로 사퇴할 리도 만무하다. 이같은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요구들이 현실화되기는 쉽지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지나갈 일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일대 경종을 울리는 조치가 없다면 이런 류의 국기문란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주모자들이 구속조차 되지않고, 가담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는데, 누가 겁을 내겠는가.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을 주문한다. 우선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이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는 발언을 했던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TV토론에서 국정원의 댓글공작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고 이는 진상을 왜곡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박 대통령은 어찌되었든 이 사건의 수혜자임에 분명하다. 만약 경찰의 은폐. 축소가 없이 진상이 있는 그대로 공개되었어도 박근혜 후보의 51.6% 득표율이 가능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수혜자가 되었던데 대한 책임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경찰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정통성 면에서 박 대통령은 당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또 박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정권 내부에서 방해한데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원세훈-김용판 두 사람의 구속와 공직선거법 적용을 막으려 한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검찰의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나버렸고 검찰수사 결과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오직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여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국기문란 범법행위자들을 비호한 황 장관은 책임을 물어 사퇴시켜야 마땅하다.
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이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럴 일이 아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과정의 정통성 여부와 관련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이 사건에 있어서 제3자가 아니라 관련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책임을 분명하게 국민에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막는 단호한 쇄신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한 모습없이 이 사건을 지나가려 한다면 박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하곤 하던 원칙은 어디로 실종되었는가를 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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