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정국을 가리켜 ‘국정원 정국’이라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하여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요구되고 국정원 개혁이 초미의 과제로 제시되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국정원은 자신을 상대로 국정조사를 요구하던 정치권을 향해 메가톤급 폭탄을 던졌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동을 했다. 국정원의 기습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으로 정국은 대혼돈 속에 빠져버렸다. 대선개입에 이은 또 한번의 정치개입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조직을 보호하려던 국정원의 의도, 그리고 이에 공조하여 정국주도권을 탈환하려던 청와대-새누리당의 의도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미수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선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에 따른 역풍이 간단하지 않다. 국민의 동의를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무리하게, 그것도 정치공작의 냄새를 짙게 풍기며 이루어진 일이기게 국정원을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대학 총학생회에 이어 종교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등, 시국선언은 각계로 확산되고 있다. 야당도 총력태세에 들어갔다. 대화록 공개는 국정원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정원이 부메랑을 맞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에 의해 저질러진 각종 정치개입, 선거개입 행위가 드러난다면 국정원은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에 더 이상 맞서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메랑은 새누리당으로도 향하고 있다. 대화록 공개를 계기로 NLL 정국을 조성하여 반전을 꾀하던 새누리당은 대화록의 사전 입수를 시사하는 김무성 의원의 ‘자백’과 권영세 주중 대사의 대선 때 발언이 공개됨에 따라 다시 수세에 처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사전 입수했음을 드러내는 발언들이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과의 공모가 있었을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의 정치공작이 국정원의 단독행동이 아니라 새누리당 선대위가 연관되었음이 확인된다면 이는 대선의 정당성 시비로 이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애당초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문제로 초점이 맞추어졌던 정국상황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촉발한 대화록 공개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무엇하나 해결되는 것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정국의 혼돈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사안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논란의 중심에는 국정원이 자리해왔다. 국정원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박 대통령이다. 자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정상회담의 대화록까지 공개해버리는 행위가 묵과된다면 앞으로 국정원이 또 어떤 일을 벌일지 알기 어렵다. WSJ은 '한국에서는 정보기관이 누설자(Leaker)'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스노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겠지만, 정보기관은 일반적으로 비밀을 폭로하기보다는 잘 지키는 것이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기밀문서로 분류된 대화록을 공개해 정치적 대립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한국정부의 위신을 추락시킨 국정원의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를 위해 남재준 국정원장은 해임되어야 한다,
새누리당이 대화록을 사전 입수한 의혹에 대한 책임도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박 대통령과 무관할 수 없다.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내에서 대화록 공개여부를 논의하는 회의까지 있었던 사실을 박 대통령이 보고받았는지는 앞으로 가려져야 할 문제이겠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국정원과 공모하여 공작정치로 대선승리를 거둔 후보가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대화록 사전 입수 경위에 대해 엄정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검찰에 지시하고,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가 번번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도, 김무성 의원이 말한 내용도 청와대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일들은 국정원과 새누리당 당사자들의 일이지 청와대가 뭐라고 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이다. 청와대가 이렇게 대응하는 사이 어느덧 시국선언은 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취임 4개월 만에 박 대통령은 시국선언을 맞게 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인들 제대로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박 대통령에게 귀국 후 시국을 수습할 수 있는 책임있는 조치들을 주문한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그리고 박 대통령의 사과는 그 최소한의 조건이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정원 국정조사 가로막는 새누리당의 오만 (23) | 2013.07.31 |
---|---|
껍데기만 남은 국정원 국정조사 (14) | 2013.07.29 |
새누리당의 기사회생, 문재인-김한길의 오류 (17) | 2013.07.22 |
NLL 대화록, 다시 정국의 뇌관이 되다 (9) | 2013.07.18 |
새누리당과 국정원을 구출해준 민주당의 무리수 (16) | 2013.07.03 |
새누리와 국정원의 물타기,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다 (6) | 2013.06.21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라 (3) | 2013.06.17 |
김양건 참석 압박, 박근혜 정부의 대화방식 (11) | 2013.06.11 |
안철수 신당이 진보정당이 될 것이라고? (7) | 2013.05.28 |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친노’의 앞길은 (8) | 2013.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