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KBS를 통해 이날 방송에 전문가 패널로 나와줄 것을 요청받았고, 이 대통령을 상대로 주로 정치분야에 관한 질문을 할 예정입니다.
홍보의 들러리? 그래도 대화는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어차피 이 대통령의 홍보를 위한 자리 아니냐, 결국 들러리서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물론 청와대가 이 자리를 추진했던 것은, 추석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민심을 챙기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정권의 홍보를 위한 자리라는 해석도 가능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홍보를 하고 싶은 것은 청와대의 희망사항일 뿐이고, 국민은 국민대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마는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패널들도 할 소리를 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의견과 입장이 다를수록 서로가 대화를 하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이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좁은 자세입니다. 제가 '들러리'론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유입니다.
더욱이 KBS 제작팀은 이 자리가 일방적인 정권홍보의 자리가 되지 않도록, 어려운 여건에서도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널 선정에서부터 의제선정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측에 휘둘리는 일 없이 독립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민의 소리가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제작팀의 노고에 격려를 보낼만 합니다. 청와대의 생각대로 만들어지는 자리라든가, 청와대가 패널을 교체하게 했다든가 하는 추측성 기사들은 제작팀의 독립성을 너무 무시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유감스러운 패널선정 논란
그런데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 너무 촉각을 곤두세워서인지, 유감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패널선정 소식이 기사화된 직후 일부 보수성향 매체와 단체들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습니다.
우선 뉴라이트 측에서 경향신문 유인경 선임기자를 문제삼았습니다. 방송에서 미국 쇠고기 문제와 관련하여 근거없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패널교체를 요구하는 성명까지 냈습니다. 어떤 매체에서는 같은 이유로 유 기자를 '좌편향적' 인사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제 경우도 안전지대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 역시 '좌편향적 인사'니 '대표적인 친노 코드'니 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라는 것이 어이가 없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고정 필진으로 글을 써왔다는 것, KBS 정연주 전 사장 해임에 반대했다는 것, 불법 촛불집회에 대해 우호적 논조로 일관했다는 것 등등입니다.
제가 '친노'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해괴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 시절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하도 많이 해서 '친노' 진영으로부터 원성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특정 언론에 글을 썼다는 것, 언론계의 반발을 불러온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반대했다는 것,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 촛불집회에 우호적이었다는 것이 '좌편향'의 이유라면 정말 기막힌 일입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글을 쓰고 방송을 해오면서 '좌편향'이나 '친노' 소리를 들을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양비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안에 따라 균형있게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패널 하나 선정하는 문제를 놓고서도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좌-우 이분법의 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입니다.
때마침 유인경 기자가 개인사정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고 <시사 IN> 이숙이 기자가 대신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뉴라이트의 반대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아마도 경향신문 내부에서의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들러리'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굳이 대화의 자리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 경향신문 내부의 분위기에도 그리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대화를 할 자세가 되어있나?
아뭏든 국민과의 대화 자리를 앞두고 벌어진 풍경들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대화의 자세가 여전히 결여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소통보다는 홍보성 이벤트로 삼고자했던 청와대, 패널 선정에서 낡은 이념논리를 내세운 보수성향 단체들, 이 대통령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대화조차도 거부하는 경직된 모습들.......
서로가 진정한 대화를 할 자세가 되어있지 못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간에 대화와 소통을 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일 밤 자리를 앞두고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 대통령이 민감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판에 박은 답변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듣기싫은 질문이라 해서 의례적으로 답하고 지나가는 식이 된다면 국민과의 대화는 빛이 바래질 것입니다.
설혹 싫은 소리가 나오고 수긍하기 어려운 말이 나오더라도, 다른 의견에 귀기울이며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을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100분 동안에 꺼내는 '말'보다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9일 밤 국민과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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