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언론마다 한해를 결산하는 기사들이 눈에 띕니다. 10대뉴스, 올해의 인물, 올해의 말.... 다들 2009년의 기억할만한 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도 2009년을 정리하다보니 가장 인상적인 말이 떠오릅니다. 대통령의 말도 아니고, 잘 알려진 정치인의 말도 아니었습니다. 개그맨 박성광의 말이었습니다. 요즘 유행어가 되어 다들 알고 계신 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지난 11월부터 KBS 2TV <개그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만취한 취객으로 나오는 박성광은 경찰관 앞에서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어!”하고 외칩니다. 우리는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세금 내랄 때 꼬박꼬박 내고 법도 잘 지키며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국가는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그런 의문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취객 박성광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우리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던 불만을 끄집어내주었기에 큰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술에 취한 박성광은 다시 말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세상~.” 그의 말은 이미 술주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을 한마디로 너무 잘 꼬집고 있는 말입니다. 입시경쟁, 부의 경쟁, 출세경쟁, 외모지상주의 경쟁, 그 무수한 경쟁의 터널을 거쳐야 하는, 그러면서도 정작 1등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박성광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역시 후련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박성광은 횡설수설하고 비틀비틀하며 말하지만, 그의 몇마디 말은 우리의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저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압축적이고 함축적인 풍자의 말을 접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2009년 한해에도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실을 비판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의 말도 어김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다 제치고 개그맨 박성광의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만큼 우리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많나 봅니다. 언제나 가슴 속에 불만으로 혹은 한으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내놓고 말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처지, 그 말을 개그맨 박성광이 대신 해주니 속이 후련해지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국가가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될까요? 새해에는 1등이 못된 사람들도 기억해주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아직은 그 길이 너무 멀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성광의 말에 후련함을 느꼈던 우리는, 돌아서면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시 ‘기억되는 1등’이 될 것을 주문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슬픈 굴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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