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비평

노홍철 김구라도 위축시키는 방송검열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전개되고 있는 방송통제는 단지 보도나 시사분야에서만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상상력과 표현력에 대한 규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제(19일) 한국PD연합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는 ‘방통심의위, 무엇을 위해 심의하나’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방통심의위의 지나친 규제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나왔다.

정부 정책을 비판한 시사 프로그램들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제재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지만,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들에 대한 규제도 심각한 양상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말 MBC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내린 방통심의위원회의 권고 조치는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 뿐이 아니다. <PD저널> 보도에 따르면 어제 토론회에 참석한 MBC <놀러와>의 신정수 PD는 “<무한도전>에서 ‘돌+I’를 자막으로 사용하지 마라, 김구라 씨의 말은 자막으로 넣지 마라 등 사용하지 말아야 할 단어와 소리 등이 공문으로 내려온다”며 “방송사 재허가 심사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 현업 PD들에게 압박이 되고 자체 검열이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방송인 김구라, 김제동 씨에 대한 캐스팅에서도 어려움이 생긴다”고 신 PD는 밝혔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국회에서 노골적으로 김구라 씨를 ‘막말 방송인’으로 칭하고, 그의 퇴출을 요구한 직후 그가 출연중인 MBC <황금어장>, <세바퀴> PD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구라 씨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 심의가 들어올 것이고 그럴 경우 PD들이 캐스팅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신 PD는 우려했다. 그는 “김제동 씨의 경우도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런칭되지 못했을 경우 외압 등 여러 가지로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어 캐스팅을 자제하게 된다”고 전했다.

신 PD는 지금 상황을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하며 “당시 아이돌 그룹 H.O.T나 젝스키스의 머리 색깔, 귀고리 등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규제를 했다”면서 “패션에선 복고가 유행하지만, 심의에서조차 복고가 이뤄질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PD저널>은 보도했다.

앞의 신 PD의 진단에서도 드러나듯이, ‘막말 규제’를 명분으로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개입과 규제는 시청자들의 욕망과 감수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문제되는 내용에 대한 규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규제는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 자칫 권력이 예능 프로그램의 세세한 내용에까지 개입하여 상상력과 표현을 위축시키는 결과는 낳게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회환경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잣대로 방송을 재단하려는 과거회귀적인 모습이다. 이같은 방송정책이 예능인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어떻게 위축시키고 있는가는 앞의 얘기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방송에 대한 권력의 개입은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 더욱이 상상력을 생명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한 탤런트가 방송에 나오지 못했던 기막힌 일이 있었다. 그것이 과연 지금은 상상도 못할 옛날 이야기인가. 여당 정치인들이 김구라의 퇴출을 요구하고, 그로 인해 그의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을 보면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통심의위가 이끌고 있는 사실상의 방송검열은 시사 프로그램을 넘어 이제 예능 프로그램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