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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이병헌과 타이거우즈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국 언론에게 이병헌과 타이거우즈의 차이는 무엇일까. 최근 두 스타의 스캔들에 관한 우리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이병헌의 전 여자친구로 알려진 캐나다 동포 권미연씨는 이병헌의 결혼 유혹에 속아 잠자리를 함께 해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었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드라마 ‘아이리스’로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는 이병헌의 일이기에 그 사연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병헌 측에서는 권씨의 주장이 대부분 거짓이라며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권씨 측으로부터의 협박에 대해서는 수사의뢰를 하겠다고 했다.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권씨가 이병헌의 여자친구였던 사실은 양측이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문제가 된 상황에 대해서는 워낙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본격적인 진실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병헌이 잠자리까지 같이하며 깊이 사귀었던 여자친구에 대해 배신행위를 하며 노리개감으로 삼았던 것인지, 아니면 권미연씨 측이 돈을 뜯어내기 위해 악의적으로 일을 부풀린 것인지, 내막을 알 길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무엇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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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면 이미 이병헌이 판정승을 거둔 모습이다. 양측의 주장과 진실공방 내용이 제대로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권미연씨 측은 이병헌의 약점을 노리고 거액을 뜯어내려한 공갈단으로 몰리고 있는 분위기이다. 권씨의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언론들은 <이병헌 "권씨측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강력대응“> <이병헌 피소.."20억 원 공갈협박당했다"> 는 등의 기사를 집중적으로 실었다.

권씨가 고소한 내용에 대한 전달이나, 그 진위여부에 대한 검증도 있기 전에 곧바로 이병헌의 소속사가 발표한 입장만이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을 향한 이병헌 측의 선제적 대응에 의해 많은 독자들은 ‘질이 안좋은 사람들’에게 걸려 이병헌이 난처하게 되었다는 예단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일 가능성도 있다. 요즘 세상에 미혼 남녀가 잠자리 몇 번 같이하고 책임 안진다고 고소하는 것에 대해 코웃음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제도 아닌 남녀 사이의 문제이기에, 제3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권미연씨는 언론에 보도된 ‘20억원 요구 협박’에 대해 “언제 누가 어떤 사람이 협박당했으며 누가 정체불명 남성들인지 … 아직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이병헌씨가 직접 나와 밝혀 달라”며 “지난 1년여 동안 이병헌씨의 여자로 철저히 농락당하면서 확인했던 사실을 모두 밝히겠다”고 하고 있다.

진실공방의 결말은 간단하게 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양측의 주장을 전하고 취재를 통해 검증하기에 앞서, 이미 이병헌의 손을 들어준 분위기를 낳고 있다. 물론 이병헌 같은 한류스타가 이런 문제로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이심전심의 우려가 자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한 여성에게도 일생이 걸려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보도는 신중하고 공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병헌 스캔들에 대한 이러한 보도는 최근 있었던 골프황제 타이거우즈 스캔들 보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타이거우즈의 교통사고 소식으로 시작된 불륜설은 우리 언론의 메인 뉴스로 등극하며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심지어 지상파 TV의 메인뉴스에서까지 미국 현지 특파원을 연결하는 ‘소동’을 벌일 정도로, 우리 언론의 불륜 추적 열의는 대단했다.

도대체 타이거우즈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의 애인이 몇 명이고 최종 선택이 무엇일까를 왜 알아야 하는지, 그런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리 언론의 과잉보도는 타이거우즈에게 사생활의 영역을 남겨놓지 않을 태세였다.

불과 1주일 전까지 그러했던 우리 언론의 기세를 돌아보면, 이병헌에 대한 접근방식은 시작부터 접고 들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언론들의 독자적인 취재는 없이 소속사 측의 입장이 모든 진실인양 보도되고 있다. 언론들이 타이거우즈에 대한 과잉보도를 반성하고 스타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로 결심해서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떨어져있는 타이거우즈는 아무리 두드려도 상관없지만, 살아있는 ‘힘’을 갖고 있는 이병헌은 다르다는 판단을 한 결과는 아닐까. 진실의 내용에 상관없이 일단은 이병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고소인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소장을 근거로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을 일부 언론이 유포하고 있다“는 이병헌 소속사 관계자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누구의 편을 들고 말고 하려 하는 말이 아니다. 이병헌과 권미연 사이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언론이 힘있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 사이에서 공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병헌이라는 초거물급 스타와 권미연이라는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진실공방에 대해, 언론이 예단을 유포하지 말고 공정한 자세로 접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