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도 요오드와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확인됐다. 그러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검출된 방사성 물질이 매우 극미량으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크다. 일본의 방사성 물질이 우리에게 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정부의 호언장담이 빈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같은 장담에 앞장섰던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의 강도는 셀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라디오.인터넷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혹시 일본 원전 사고로 우리가 입는 피해는 없을까 걱정하시는 분 많으신 줄로 압니다. 먼저 안심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본의 방사성 물질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방사능 낙진에 관한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과학적인 억측에,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17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월례회동을 가진 자리에서도 일본방사성 물질 확산 우려와 관련해 "걱정할 필요없다. 유언비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유언비어’니 ‘소문’, ‘억측’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방사성 물질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가능성을 일축했다. 과학보다는 신념에 따른 표현같았다. 그런데 결국 일본에서 방사성 물질이 날아온 것이다. 검출된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대기를 통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앞으로 일본에서의 방사성 물질 누출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검출 사실 은폐의혹을 받고 있다. 강원도 대기중에서 방사성 제논이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 23일이지만 발표는 27일 저녁에야 이루어졌다. 또 방사성 요오드 등 검출사실도 KINS는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뒤늦게 시인하면서 은폐의혹을 키웠다. 당연히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깊게 만들었다.
애당초 잘못된 접근법이 낳은 결과들이다. 대통령은 근거없이 호언장담하는 식으로 방사성 물질이 날아올 수 없다고 단언할 것이 아니라, 경각심을 갖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야 했다. 일본과 우리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어떻게 편서풍 하나만 믿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대통령부터 그렇게 긴장을 푸는 얘기를 하니 국민들은 오히려 불안해 하는 것이다.
28일자 <서울신문>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태 때 러시아정부 환경고문을 맡았던 생태학자 야블로코프 박사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관련, "한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 극동 지방이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신속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 때는 독일, 스웨덴은 물론 스코틀랜드까지 방사능이 날아갔는데, 그에 비하면 한국은 후쿠시마와 아주 가까운 거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원전 위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만큼, 우리로서는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불필요하게 불안감을 조성하라는 말이 아님을 알지 않는가. 정부는 무조건 큰 소리치는 것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더 나쁜 상황까지 대비하는 긴장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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