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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희태 의장의 오리발, 국민 앞에 진상고백해야


나는 모르는 일이다.”

“4년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소정의 책임을 지겠다.” 

지난 18일 귀국한 박희태 국회의장의 귀국하면서 꺼낸 얘기였다. 한마디로 말해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는 발언들이었다. 그가 귀국하면 돈봉투 살포의 진상에 대해 무엇인가 털어놓거나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그리고 국회의장직도 사퇴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버티기의 모습이었다. 자신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방법으로 오리발을 내밀었고, 진상규명에 대한 다짐같은 것도 없었다. 

박희태 의장 (사진=-유성호)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지겠다는 말도 묘하다. 검찰이 무엇인가 밝혀내면 책임지겠지만, 검찰이 밝혀내지 못하면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자신이 먼저 국민 앞에 진상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어디 검찰이 진상을 밝혀내는지 못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국가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처신으로서는 대단히 무책임한 모습이다. 그 정도의 위상이라면 검찰 수사를 뛰어넘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먼저 의식하는 것이 도리이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받더라도 우선은 국민 앞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검찰 수사 이전이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다 고백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박 의장은 이 모든 것을 회피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은 국민에 대한 책임에는 눈감고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놓고 검찰과 머리싸움을 벌이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검찰은 국회의장 비서실과 부속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현직 국회의장의 집무실 바로 옆방까지 압수수색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회의장의, 아니 국회의 치욕이다. 그러나 오리발만 내밀다가 이러한 상황을 자초한 박 의장은 이 치욕스러운 상황 앞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이제라도 박 의장은 돈봉투 살포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명색이 국회의장이라면 그가 바라보아야 할 상대는 검찰 이전에 국민이다. 우선은 자신이 알고 있는 돈봉투의 진상을 고백해야 한다. 4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는 말도 믿기 어렵지만, 설혹 그렇다해도 당시 캠프 책임자들에게 확인하면 돈봉투 살포 상황은 쉽게 복기해낼 수 있는 일이다 

책임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질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지는 것이 옳다. 이미 드러난 진상만 놓고 봐도, 당시 박희태 캠프에서 돈봉투를 살포했던 것은 확인되었다. 캠프 책임자들의 연루에 대한 증거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박 의장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 수치이다 

박 의장은 즉시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까지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낯두꺼운 일이다. 아울러 당시 돈봉투 살포의 진상을 국민 앞에 고백하기 바란다. 증거를 은닉하여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를 피해나갈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