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위원회가 시작부터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첫 회의에서 최구식 의원에 대한 자진탈당 권유, 회기중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의 쇄신안을 내놓으며 기염을 토했던 비대위는 며칠가지 못해 자중지란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발단은 이상돈 위원을 비롯한 일부 비대위원들의 개인적 견해 표명. 이 위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재오 의원의 총선 불출마, 이상득 의원의 자진 탈당을 촉구했다. 또 이 위원은 “이상한 발언으로 당을 온 국민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권위를 실추시킨 전직 지도부도 책임져야 하고, 구시대적 발상으로 영남 지역에 안주해 ‘박비어천가’만 부르거나, 존재감 없는 의원들도 박 위원장을 진정 돕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용퇴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2004년 최병렬 대표가 퇴진했듯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 여당을 책임진 사람들이 명예롭고 아름답게 물러나줘야 당이 부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안상수 전 대표와 일부 친박계 의원들까지 퇴진 대상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이다.
이준석 위원 또한 "국민들이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대위의 목표"라며 "MB 정부와 같이 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용퇴를)결심하실 분들이 있다"며 "한나라당 의원이나 전체 국회의원의 대표성을 말할 때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그런 측면에서 (국회의원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외부 비대위원들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한나라당에서는 계파간의 권력투쟁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검증 받지 않은 비대위원들이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는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퇴진의 대상으로 지목된 홍준표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어이가 없다”면서 이상돈 위원이 지난해 천안함 침몰이 외부 공격이 아닌 선체 내부의 누수 사고일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음을 상기시켰다. 김종인 위원에 대해서도 “내가 검사시절에 (뇌물사건)자백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전여옥 의원도 김 위원이 과거 뇌물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거론하며 “뇌물을 받아 의원직을 잃은 분이 한나라당을 쇄신해야 하느냐”며 “분명 퇴보고, 반(反)쇄신”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외부 비대위원들을 향해 점령군, 완장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비대위원들의 발언이 특히 친이계를 자극시켰고 이들이 다시 방어적 반격에 나서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박근혜 위원장이 "개인적인 의견일 것"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내부 위원들 사이에서도 외부 위원들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들에 대한 설득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단 지도부가 나서 계파간 갈등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후유증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비대위원들의 발언이 당내 갈등과 권력투쟁을 촉발시킴으로써 비대위의 쇄신작업이 덮어져버리는 상황으로 반전되어 버렸다. 첫날 반짝했던 비대위의 쇄신안들은 비대위를 둘러싼 갈등 파문으로 실종되어버린 것이다. 비대위를 통해 선제적인 쇄신을 시도했던 박근혜 위원장으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물갈이의 문제야 공천과정에서 대두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정무적 감각이 없는 외부 비대위원들이 시점에 대한 고려없이 이를 너무 일찍 터뜨려버린 것이다.
이번 논란은 한나라당 내에서 비대위의 위상에 대한 불신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외부 비대위원들의 면면에 대해 엇갈린 반응이 있었던 터였지만, 그들의 공격적 발언으로 비대위를 향한 당내에서의 반발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앞으로 비대위가 쇄신을 선도해 나가는데 있어서 장애가 될 것이며, 결국 박근혜 위원장의 부담을 더하게 만드는 상황을 낳게될 것이다.
지도부이지만, 막상 정무적 능력이 부재한 위원들로 구성된 한나라당 비대위는 시작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쇄신보다 권력투쟁이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의 구상은 시작부터 어긋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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