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같은 극한의 절망적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연대하며 재앙에 대처하는가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많은 긍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사 리유, 그의 동지 타루, 기자 랑베르 등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운 사람들의 힘을 모은 노력으로 오랑시의 시민들은 페스트로부터 해방을 맞게 된다. 그런데 한 사람, 가장 부정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범죄자 코타르이다. 그에게는 페스트가 확산된 상황이 오히려 편하다. 전에는 경찰에 소환될 처지였지만 페스트 때문에 경찰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어졌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음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을 때 코타르만은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페스트가 물러가려 하자 유일하게 불안해했던 사람이 코타르였다.
≪페스트≫에서 코타르는 이렇게 공공의 생명보다 개인의 안위를 우선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등장하며 다른 인물들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런 코타르적 군상은 2015년 한국의 메르스 사태 속에서도 발견된다. 모든 국민이 공동체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독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서울 메르스대책본부장을 자임하고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한 권력의 비토와 공세 광경들이 그것이다.
사진은 박원순 시장 페이스북에서
박원순 시장이 심야 브리핑을 갖고 서울에서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들을 발표하며 메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박근혜 정부로부터 돌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비난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박 시장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비난했다. 그 비난의 대열에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섰다. 그리고 대통령은 굳이 박원순의 서울시를 피하고 남경필 지사가 있는 경기도를 방문지로 택했다. 박 시장이 메르스 확산을 막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이 국민에게 인상적으로 전달되자, 그가 메르스 대응의 중심에 서는 인물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속내가 읽혀졌다.
급기야 검찰이 박원순 시장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한 의료단체가 고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지만, 상식적으로 각하 처분을 내리는 것이 마땅한 사안을 갖고, 정체불명의 단체가 고발을 했다고 해서 검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한 배경을 짐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서울시장이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앞장섰다는 이유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서울시장이 나서서 대신 해주었다면 응당 고마워하고 상이라도 주어야할 일이거늘, 이렇게 괘씸죄의 적용 대상이 되어버린 기막힌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권력의 이러한 모습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 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안위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는 점에서 ‘한국판 코타르’라는 야유를 들을 법하다. 함께 메르스 퇴치에 힘을 모아야 할 이 절박한 시점에 무엇이 다급해서 박원순 시장을 비토하고 심지어 수사의 칼날까지 들이대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박원순이라는 인물이 정치적으로 부상하는 현상에 대한 견제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이러면 안된다.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사태 앞에서 이 무슨 속좁고 부도덕한 정치적 장난인가.
≪페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페스트에 쓰러지고 마는 타루가 의사 리유에게 한 말이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이 사회에는 마음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그 마음 속의 페스트를 치료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현실이다. 어쩌면 전염병보다도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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