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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완종 리스트 핵폭탄, 정권 차원 문제다

김기춘, 허태열, 유정복, 홍문종, 홍준표, 부산시장, 이병기, 이완구..... 고인이 된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나왔다고 보도된 이름들이다. 박근혜 대통령만 빼고는 박근혜 정부의 실세 핵심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내노라하는 이름들이다. 가히 핵폭탄급 메모를 남기고 성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4월 10일자 경향신문


이쯤 되니 그가 검찰수사에 항의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 마음이 대략 짐작된다. 그동안 같은 식구처럼 생각하고 돈 필요하다면 그렇게 돈을 대주며 박근혜 정부 사람들을 도와주었는데, 이제와서 자신을 감옥에 보내려 하는데 대한 극도의 항의 표시로 자살을 선택했을 법하다.

물론 성 회장의 메모에 등장한 사람들이 모두 돈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공소시효를 따지기 이전에, 성 회장이 고인이 된 마당에 등장 인물들이 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기소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리스트에 등장한 사람들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며 펄쩍 뛰고 나설 것이다. 돈을 주었다고 메모를 남긴 사람은 세상을 떠났고 현금으로 주고받았을 돈에 무슨 증거가 남아있겠는가.

그러나 법률적으로 어떤 결말이 맺어질 것인가에 상관없이 이번 파문은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일대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성 회장이 남긴 육성 인터뷰 내용이 워낙 구체적인데다가, 여러 인사들의 경우 돈의 액수까지 명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굳이 날조극을 만들어낼 이유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하고 그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는가에 상관없이, 박근혜 정부가 입을 타격은 엄청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리스트에 등장한 인물들은 실제로 너도나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나오기 이전에 돈을 받았다고 실토한 정치인을 본 기억이 없다.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이런 경우 국민은 상식의 잣대로 진실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정권적 차원에서 진실을 고백해야 할 일이다. 성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박근혜 후보 경선 당시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먼저 돈을 요구해와서 7억원을 줬고, 그 돈으로 경선을 치렀다고 말했다. 당연히 허 전 실장을 비롯한 경선 캠프 관계자들은 당시 불법자금 모금의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은 경선 불법자금 모금과 사용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리스트에 등장한 새누리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법적 처벌 여부에 상관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도리이다. 모두가 안받았다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은 리스트에 등장한 사람들이 대부분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런 상태에서 정권이 부패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 전쟁을 선포했던 총리의 이름마저도 메모에 등장한 마당에.

결국 정권적 차원에서 책임있는 대답을 내놓아야 할 문제이다. 이 와중에 누구는 받았을 것이고 누구는 안받았을 것이고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차떼기 사건 뒤에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천막당사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청와대 앞에 다시 천막이라도 칠 것인가. 법적 기소 여부에 상관없이 일단 다들 물러나라. 시장으로, 도지사로, 등장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검은 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어디 국민이 할 일인가. 그들이 물러난 폐허 위에서 정권을 다시 짜라. 내 말이 너무 성급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