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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광화문광장, 아이리스는 되고 집회는 안되나

나도 요즘 ‘아이리스’를 즐겨 본다.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고 말이 안되는 장면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냥 재미로 본다. 이병헌이며 김태희며 워낙 화려한 출연자들을 보는 맛도 있고, 빠른 스토리 전개가 흥미롭다.

그런데 이 ‘아이리스’ 촬영을 위해 광화문광장이 내일 (29일) 하루동안 통제된다. 서울시는 KBS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 협조 차원에서 29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광화문광장과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 방향 도로를 통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촬영은 광화문광장에 핵폭탄을 터뜨리려는 쪽과 이를 막으려는 쪽의 총격전, 차량폭파 장면 등이라고 한다.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서울의 심장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이 많은 눈길을 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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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그런데 이렇게 되면 휴일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종일 교통혼잡이 있을 것이 예상된다. 시민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아이리스’의 촬영을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서울시가 판단한 모양이다. 서울시는 “이 드라마가 내년 초 일본방영이 확정되고 아시아와 유럽 판매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서울의 모습을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도로를 통제하는 것이 처음있는 일은 아니다. 영화 ‘해운대’ 촬영 당시에도 부산의 광안대교 8차선을 전면 통제하고 촬영을 하도록 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드라마 촬영을 위해 주간 시간대에 광화문 한복판을 통제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아이리스’ 역시 팬들이 많은 인기 드라마이고, 또 세계진출을 노리고 있다 하니까 광화문광장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시민의 불편이 다소 따르더라도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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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광화문 교통통제도

그러나 광화문광장 이용에 대한 서울시의 이중 잣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협력해주는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경 일변도로 대응해왔는가 하는 문제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시민의 안전과 자유로운 통행을 우선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 및 문화행사를 허가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도 만들었다. 더 나아가 경찰과 협조하여 광화문광장에서의 합법적인 1인 시위나 3보1배까지 미신고 불법집회로 간주하는 등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철저히 제약해왔다.

그러던 서울시가 ‘아이리스’라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는 광화문광장을 내준다니까 형평성 논란이 따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화연대, 참여연대, 야4당 서울시당 등은 지난 3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광화문광장 조례의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사실상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고, 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의 이중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광화문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비판했다. 그 날도 경찰은 이 기자회견을 피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참석자 10명을 연행했다. 이렇게 광화문광장에서 시민과 경찰 간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광화문광장이 ‘아이리스’의 것이 될 수는 있어도, 말하고자 하는 시민의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인지. '아이리스' 촬영을 계기로 광화문광장의 이용에 대한 서울시의 발상의 전환이 따라야 함을 주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