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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KBS 노조의 총파업,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김인규 회장이 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된 가운데 이제 이목은 KBS 노조로 향하게 되었다. KBS 노조가 김인규 사장 임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이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KBS 노조가 말로만 투쟁을 하다가 얼마 후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린다면, 설혹 PD와 기자들의 반발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김인규 체제는 비교적 쉽게 KBS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KBS 노조가 진짜로 마음먹고 몸을 던지는 장기투쟁에 들어간다면 김인규 회장은 ‘제2의 서동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KBS 노조는 김인규 회장이 사장이 될 경우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진작부터 선언했다. 일부에서는 KBS 노조가 이병순 사장이 연임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상황을 전제로 한 총파업투쟁을 선언했다는 의심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KBS 노조는 총파업투쟁을 공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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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노조 홈페이지

KBS 노조의 입장은 김인규 회장의 임명 제청이 결정된 직후 다시 확인되었다. KBS 노조는 이사회가 끝난 직후 <낙하산 저지와 방송장악 분쇄- ‘총파업 투쟁’을 선언한다!>는 성명을 내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 KBS 노동조합과 5천 조합원은 분연히 떨쳐 일어설 것이다. 총파업으로 배수진을 치고 정권의 하수인 김인규가 청정지대 KBS에 단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이다. 공영방송 KBS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을 거세당하고, 독재의 길을 돕는 국영방송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낙하산 저지 투쟁은 깨어있는 국민들의 동참으로 정권 퇴진투쟁으로 승화할 것이다....”

이쯤 되었으면 이제 KBS 노조의 총파업투쟁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KBS 노조는 23일 열리는 비대위에서 총파업 세부 일정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물론 총파업투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게 되겠지만, 그 결과는 노조 지도부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결국 열쇠는 KBS 노조가 쥐고 있는 셈이다.

KBS 노조가 거듭해서 이 정도 입장을 밝혔으면 이제는 그들의 투쟁 의지를 믿어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아직은 KBS 노조가 정말 특보출신 사장 저지를 위한 투쟁을 끝까지 벌여나갈 것인가에 대해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동안  KBS 노조의 비상식적인 ‘회군’에 당한 경험이 워낙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장악 기도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KBS 노조는 함께 투쟁하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KBS 노조의 투쟁선언을 ‘양치기 소년’의 고함처럼 흘려버리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전국언론노조가 낸 성명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또 다시 이런 인사가 KBS를 장악하려 하는데 대해 KBS 구성원들, 특히 KBS 노동조합의 깊은 성찰과 행동이 요구된다.... KBS 노동조합은 그들이 천명한대로 구성원들의 염원을 깊이 새겨 공영방송 독립 투쟁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다른 언론노동자들도 KBS 노조를 향해 ‘말이 아닌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기로에 선 것은 김인규 회장만이 아니다. 김인규 회장은 KBS에 다시 입성해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KBS 노조는 진짜 노조로 되살아 나느냐 아니면  짝퉁노조로 판명이 되느냐를 가르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KBS 노조가 먼저 나서서 김인규 회장을 지목하고 총파업투쟁 선언까지 해버렸다.

그동안 KBS 노조가 아무리 미덥지못한 모습을 보였어도, 이번에는 일단 객관적 상황이 달라보이기는 하다. KBS 노조로서도 모든 것을 건 시험대에 오르게 된 상황이다. 이번에는 과연 믿어도 될 것인지,  그들의 행보를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