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총리 후보감 명단에 어제부터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네명으로 압축된 마지막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학계, 정치계, 언론계를 두루 거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이명박 당선자측 입장에서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언론사의 사장, 그것도 그동안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밀어주기'에 총대를 맸던 <동아일보>의 사장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언론파워로 떠오른 <동아일보>
당장 <동아일보>와 이명박 당선자의 관계가 떠오르게 된다.
<동아일보>의 '이명박 밀어주기'는 한나라당 후보경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경선 기간 내내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는 <동아일보>의 보도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급기야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하여 <동아일보>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 기간동안에는 BBK 의혹과 관련하여 이명박 후보를 지켜주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조선일보>가 아닌 <동아일보>가 킹 메이커로 나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압권은 대통령선거일 아침 <동아일보>의 사설이었다. '심판의 날, 미래에 투자하는 날'이라는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실시된다. 노무현 정권 5년을 심판하는 날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에 투자하는 날이다....... 모두가 투표장에 나가 국민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 주자."
노무현 정권 5년을 심판하자는 이 사설은 5년전 선거일 아침 <조선일보>의 사설 "정몽준이 노무현을 버렸다"를 방불케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동아일보>는 대선이 끝난 이후 다른 경쟁지들을 따돌리는 활약상을 보여주게 된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4일 기사를 통해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이경숙 총장이 유력하다고 단독 보도했다. 한발 앞선 특종이었다.
이어서 <동아일보>는 지난 7일자 기사에서 "인수위가 15명의 후보를 2차례 검증해 박근혜 전대표 등 6명으로 압축했으며, 17일께 후보를 2~3명으로 압축한 뒤 20일께 최종인선을 확정할 것"이라고 총리인선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동아일보>가 인수위 특종에 이어 총리 특종까지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같이 <동아일보>에만 특종성 정보가 새어나가는데 대해 다른 경쟁 신문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이명박 시대의 새로운 언론파워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언론사 사장의 총리기용은 언론독립 파괴
이런 마당에 이제는 아예 <동아일보> 사장의 총리기용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이 될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동아일보'의 밀월이 언론계 안팎에 회자되고 있고, <동아일보>가 새로운 언론권력으로 부상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가 동아일보 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총리직까지 맡는 상황이 되어버린다면 '권언유착'을 넘어선 '권언일체' 소리를 듣게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주미대사에 기용된 것을 놓고도 얼마나 말이 많았던가. 더욱이 이번에는 새 정부의 첫 번째 총리 자리이다.
내용적으로야 어차피 그동안 구가해오던 밀월과 다를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 내놓고 밀월관계를 과시한다면 우리 언론이 너무 비참해진다.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해도, 설마하니 김학준 사장이 총리제의를 받을까 싶기는 하다.
'김학준 사장 포함' 보도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오늘 아침 <경향신문>은 “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도 후보군에 올라 있지만, 김 사장이 소속 언론사가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이 당선자측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사실이라면 최악의 상황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듯하다. 김학준 사장으로서도 '동아일보 사장의 총리 기용'이 낳을 파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해도, 특정 언론사의 사장을 총리로 기용하겠다는 이 당선인측의 발상 자체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이다. 김학준 사장이 고사했다면, 이미 제의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언론의 독립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관을 미리 보는 것은 아닌지, 여러가지로 개운치가 않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어떻게 하다가 이런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는지, 언론의 자존심을 걸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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