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하면 안철수를 떠올릴 정도로 새정치라는 구호는 안철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었다. 기존 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보이겠다며 안철수는 새정치 구호를 들고 나왔고 이는 대선정국 이래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누구도 안철수와 그 세력이 새정치를 반복해서 말하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안철수의 새정치 구호에 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새정치라는 화두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생략하자. 현재의 한국 정치질서에 그것이 갖는 긍정적 의미는 익히들 알고 있다. 여야 불문하고 낡은 기득권의 정치를 극복하는 일은 중요하고, 그래서 새정치의 의미는 인정된다. 그러하기에 수십년 전부터 정치를 시작하는 제3세력마다 새정치를 들고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작금의 상황에서 새정치라는 화두가 안철수 정치를 둘러싼 논란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려 한다. 우선 새정치는 그 유통기간이 정해져있는 용어이다. 정치권 바깥에 있다가 정치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새정치의 구호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정당을 만들고 정치를 하게 되는 시점부터 새정치의 구호는 효력을 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치의 세계에서 새정치란 없기 때문이다. 세력을 모아 정당을 만들고 정치행위를 하며 다른 정당들과 경쟁하는 과정은, 물론 정치행태와 문화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겠지만, 사실은 대동소이하다. 안철수 신당이라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세력이 아닌 이상, 현실정치를 하게 되어있다. 새정추나 신당 추진에 기존 정치인들이 다수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자신들의 정치가 기존 정치세력의 정치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새정치 구호는 일종의 프로퍼갠더이다. 뭐가 그렇게 다르겠는가. 설혹 겉으로 드러나는 점들이 다른들, 그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새정치’는 안철수 세력이 신당을 추진하는 2014년 정국의 긴박성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나이브한 구호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래 우리 정치와 사회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민주주의는 과거로 회귀하였건만 ‘불통’ 대통령은 단호하기만 하다. 타협은 없다며 비판자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의 과거회귀가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그래서 우리 정치사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모두가 절박하다. 이런 긴박한 정국 속에서 새정치는 너무도 평화롭고 여유있는 화두이다. 거기에는 2014년 정국의 긴박성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안철수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적어도 2014년 정국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 통치를 저지하는 강력한 야당을 만드는데서 찾아져야 한다. 새정치라는 것도 결국은 민주당이 받지 못했던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가능케 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가 말하는 새정치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안철수 쪽은 말한다. 준비하고 있으니 앞으로 알게 될 것이라고. 사실 안철수가 새정치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에 기득권 내려놓기를 제안하며 새정치를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다. 안철수는 더 이상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정치제도 개혁안을 내놓은들, 새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나는 아무리 새정치 강령과 새정치 프로그램을 연구해서 내놓은들, 새정치가 무엇이냐를 질문을 잠재울 수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새정치에 대한 답 자체가 아니라, 사실은 다른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정치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보니 자승자박의 결과가 되고 있다. 새정치가 뭐냐는 질문이 잇따르고 그 답을 마련하는데 골몰하게 된다. 구태여 그러고 있을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이제는 다른 화두, 다른 담론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민에게 더 쉽고 간명하게 이해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야당이 되겠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야당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를 강력히 견제하겠다, 국민에게 수권의 희망을 안겨주는 야당이 되겠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도 다 알아듣는다. 더 이상 안철수 신당은 뭘 하려하는 정당인가를 묻지 않게 된다.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도 지지해주는데, 굳이 야당을 자처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야당이 자신을 야당으로 규정하기에 주저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오만한 태도이다. 세상에 여당이 아니면 야당이지, 여당도 야당도 아닌 정당은 없다. 야당의 일차적 역할은 정권을 견제하는데 있다. 이 당연한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안철수 세력이 종종 이 당연한 명제를 애써 잊고 있는 듯해서이다. 민주당이 수권가능성에 있어서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은 야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 시대의 관성적 노선와 계파패권주의에서 탈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세력은 지금의 정치환경에서는 기꺼이 ‘국민 속의 야당’이 되는 자랑스러운 길을 가는 것이 옳다. 여와 야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듯한 모호성의 전략은 결코 민주당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 신당 창당을 한다면 ‘새정치’를 대신하여 더 분명하고, 무슨 얘기인지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야당이라는 선언부터 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때 비로소 안철수 신당을 둘러싼 ‘모호성’의 의문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새정치의 자승자박에서 스스로를 풀고 나오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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