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방위원회의 이른바 ‘중대 제안’을 정부는 하루만에 거부했다. 정부는 북한이 상호 비방·중상을 중지하자는 등을 제안한데 대해 “북한이 사실을 왜곡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즉각적으로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북의 제안이 남북긴장에 대한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고 국내외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것일 뿐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을 북이 요구한 것은 실현불가능한 요구를 통해 한반도 긴장에 대한 남측의 책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였을 법하다. 또한 “그동안 비방중상을 지속해 온 것은 바로 북한"이었다는 정부의 지적도, 북한이 우리 정부를 향해 쏟아내었던 거칠은 언사들을 돌아보면 실제로 북한에게도 책임이 큰 부분이다. 북한의 한차례 제안만 갖고 그 진정성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MBN 뉴스 화면>
그러나 반대로, 북한이 새해 들어 보여주고 있는 대남정책이 기조를 종합해보면 그렇게 단칼에 일축하고 갈 일만은 아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대남도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안보당국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북은 오히려 본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이미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고, 국방위의 이번 제안은 김정은의 방침을 실행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북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단순히 위장전술로 볼 것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 등 내부사정이 남북관계 개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북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규정한 이유 가운데는 한미군사훈련 중단 요구가 중요하게 꼽힐 것이다. 그러나 연례적인 방어훈련이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이 특히 이 훈련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1월 10일자 <동아일보>는 “한국과 미국 해병대가 3월 말에 1만 명 이상의 병력과 주요 전력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을 실시할 방침이다. 규모 면에서 1989년 팀스피릿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연합상륙훈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같은 시기 진행되는 키리졸브 한미연합군사연습에 북한 급변사태 대비 훈련 내용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정권 붕괴를 겨냥한 훈련이라는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한미군사훈련 중단이라는 북의 요구를 당장 수용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북의 제안 전체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 판단된다.
북에서는 중대 제안이라고 하며 내놓았는데, 남에서는 책임전가를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는 것은 물론 상호불신의 결과이다. 상대가 어떤 것을 내놓아도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북의 책임도 따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관계 개선을 위한 모든 제안을 위장전술로만 간주한다면 앞으로도 남북관계 개선이 도모될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북관계를 임기 내내 이대로 위태롭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면,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큰 틀의 리더십이 박근혜 정부에게 요구된다.
정부의 거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황은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국방위원회의 제안을 거부한 지 하루만에 ‘중대 제안’을 먼저 실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남한도 이에 부응하는 조치를 할 것을 촉구했다. 그 실행 조치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파장이 좌우되겠지만, 우리 정부가 무조건 북한의 제의를 거부할 일은 아니다. 북이 취할 실행 조치의 내용을 보고 그 진정성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모처럼 만들어지는 계기가 있다면 남북관계 개선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해에 그러했듯이, 올해 또 다시 1년 내내 전쟁위기의 불안감 속에서 국민이 지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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