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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껍데기만 남은 국정원 국정조사

굴욕적이고 껍데기만 남은 국정원 국정조사를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무산에 대한 새누리당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진상규명을 일단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는 것이 나은가.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이루어진 기막힌 합의 내용은 이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미 민주당은 김현-진선미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제척 요구를 수용하는 굴욕을 감내한 바 있다. 두 의원에 대한 고발 당사자가 새누리당 자신이라는 점에서 제척 요구는 부당한 것이었지만, 국정조사를 안해도 그만이라는 새누리당의 태도 앞에서 언제까지나 파행을 두고볼 수만은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일단 정상화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굴욕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국정조사의 성공 여부가 꼭 두 의원의 참여 여부에 달린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이해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합의 내용은 좀 다르다. 국정원 국정조사의 성패에 크게 영향을 주는 문제들이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쟁점이 되었던 국정원 기관보고는 사실상 비공개로 진행되게 되었다. 모두 발언들만 공개로 하기로 했으니 새누리당의 요구가 90% 정도 관철된 셈이다. 이번 국정조사의 핵심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진상을 밝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국정원 기관보고는 이번 국정조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비공개로 진행한다면 알맹이는 빼고 껍데기만 남기는 국정조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원의 비밀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본연의 활동과 관련된 부분에 해당되는 것이지, 이처럼 대선개입같은 정치적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서까지 고려할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라도 국정조사를 하는 것이 낫다치더라고 일주일 더 쉬었다가 85일에야 진행된다는 점은 어처구니가 없다. “날도 더운데 특위 위원들만 일하고 있다며 휴가철에 특위를 열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완강한 입장 때문이라 한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기자들에게 다른 의원들은 쉬는데 우리 특위 위원들만 일하고 있다. 7월 마지막 주는 너무 덥다고 했다 한다. 국민을 우롱해도 분수가 있지, 이 무슨 망발들인가. 교만의 극치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국기와 관련된 중대 사안을 다루는 국정조사를 이제껏 파행시켜 놓고도 여름 휴가철이니 특위 위원들도 휴가를 가야해서 국정조사를 못하겠다니, 도대체 국민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민주당이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합의를 해주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국정조사 기간 45일 가운데 특위 운영은 5일간으로 그치게 되어버렸다. 청문회도 이틀 뿐이다. 불과 이틀 간의 청문회를 통해 거론되던 그 많은 증인들을 불러 청문을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과연 이런 국정조사의 성과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정원 국정조사는 이렇게 변죽만 울리다, 하다말고 끝날 가능성이 커져버렸다 

이같은 상황은 물론 정국 전반에서 여야관계가 역전됨에 따라 생겨난 일이다. NLL 대화록 정국으로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덮어버리고 정국운영의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는 새누리당은 이제는 오만한 자세로 버티면서 하든 말든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모습이다. 경찰청 기관보고 때 이상규 의원 등이 새로운 내용을 공개하며 관심을 모은 점만 보더라도 어지간만 하면 국정조사는 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국정조사를 했다는 새누리당의 논리에 들러리만 서는 꼴이 되어서는 안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결국 민주당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남은 일정 속에서라도 청문회 등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이 서면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걷어치워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기에 무산의 책임을 야당이 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 두달 사이에 정국이 어찌하다 이렇게 뒤바뀌어 버렸는지, 탄식이 나온다. 민주당은 그 책임을 엄중하게 통감해야 할 것이다 

야당 특위위원들만이라도 여름휴가 없이 국정조사와 관련된 현장방문이나 확인들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휴가철을 따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