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 삼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안전한 한국사회’를 만들겠다며 안전정책들을 추진해왔다. 그래서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꾸기까지 했다. 국민안전종합대책까지 내놓았고 안전정책조정회의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의 대처 모습을 보면 이같은 구호가 결국 전시행정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사고는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전개되고 있는 답답하고도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정부의 미숙하고 허술한 대응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사고 직후 초동 대응에서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사고 해역이 연근해라서 구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헬기와 구조장비, 잠수인력 동원을 대단히 미흡하게 했다는 지적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그래도 2시간 20분 동안 물 위에 떠있던 여객선이 수백명의 학생들을 실은채 그대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된데는 초기 상황에 대한 오판이 작용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구조하는 사이에 배 속에 갇혀있던 수백명은 그대로 물에 가라앉아 버렸다. 승무원들의 잘못된 대응 만큼이나 중대한 잘못이었다. 사고 당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상황과 동떨어진 지시를 하고 있었던 것도 이같은 오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생존자와 구조자 발표 과정에서 내내 혼선을 거듭했다. 16일 오후 1시까지만 해도 구조인원이 368명이라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 뒤에는 구조 인원이 164명이라고 발표했다. 민간 어선에서 구조한 인원이 중복 계산돼 실종자 수가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첫날 브리핑에서 상황 파악을 못해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그 이후 준비된 자료만 읽는 소극적인 브리핑을 해서 기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보통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정부가 공식 브리핑을 하고 나서는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중대본은 말하기를 꺼렸다. 그러는 사이 언론들은 구조작업 상황에 대해 엇갈린 보도들을 내놓았고 SNS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설들이 난무했다. 한마디로 대혼란이었다. 도대체 신고 이후 구조작업이 늦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구조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온 국민이 애타게 답을 듣고자 했지만 정부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애가 탔기에 설명을 기다리던 국민들은 정부의 답은 듣지 못한채 언론의 자극적 보도에 휘둘리고 있었다. <!--[endif]-->
어제 마침내 실종자 학부모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지금도 생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공기를 주입하고 있다"고 했던 해양경찰청의 말을 믿고 있던 학부모들은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공기주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한줄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했던 부모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박 대통령이 사고 당일 오후 5시 넘어 중대본을 방문했을 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일몰까지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지 생사를 확인하고 최대한 구출을 하고 모든 힘을 다 쏟기 바란다"고. 구조가 급한 마당에 그런 것까지 따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현장 상황과는 동떨어진 얘기였다. 학생들이 갇힌채로 배가 침몰해버린 상황에서 구명조끼는 무슨 말이고 일몰은 무슨 말인지.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구조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다고 했지만, 대통령은 몇 시간 전의 상황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게 뭔가. 이 최악의 참사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 정부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 정부는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직 구조작업이 진행중인 와중에 누구의 책임을 따지는 말부터 하고 싶지는 않지만, 더 이상 참고 지켜보기가 어려운 지점에 이르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된다. 사고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바로 앞에서 멀쩡히 지켜보는 가운데 그 많은 어린 생명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야 했는지는 반드시 가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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