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대형 재난에 대한 대처를 통해 그 나라의 리더십이 평가받곤 한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 있었을 때 원자바오 총리는 바로 다음날 현장으로 달려가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울지마라. 나와 정부가 너희들을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때 원자바오는 국민과 아픔을 나누는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얻었다. 반면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쳤을 때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인명피해가 커졌다. 그때 크로포드 목장에서 휴가를 즐기던 부시 대통령은 나흘 뒤에야 현장을 둘러보아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2009년 대만에 태풍 모라곳이 불어닥쳐 5백명 이상의 주민이 산사태로 매몰되었을 때, 마잉주 총통은 초동 대처에 실패하여 피해를 키웠고 참사 11일 후에야 현장을 방문했다. 그때 주민들은 “다들 죽었는데 이제 나타나면 무엇하느냐, 정부의 잘못으로 주민들이 죽었다”는 절규를 내뱉었다. 재난을 당한 국민과 하나가 된 리더십, 그렇지 못한 리더십의 사례들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실패한 후자의 유형에 속한다. 박근혜 정부는 어린 생명들을 구해내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슬픔과 분노에 젖은 국민의 마음과 함께하는데도 실패했다. 관료들은 그 비통의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거나 라면을 먹고 있었고, 그들을 통솔하는 국무총리는 승용차 안에 앉아 실종자 가족들과 몇 시간씩 대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진지하게 ‘라면 계란’ 발언을 하던 청와대는 자신들이 재난 대처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참사의 책임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려고 기도하다가 국민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살릴 수 있었던 어린 학생들을 그대로 수장시켜 버린 이 나라 정부가 드러낸 민낯은 그렇게 몰상식했고 비겁했다. 수많은 국민이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은 자책에 시달리며 잠을 못이루고 있던 그 시간, 박근혜 정부의 사람들은 그저 건성으로 슬퍼하거나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로 비쳐졌다.
문제는 그 한복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팽목항을 처음 찾았을 때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돌아갔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무릎꿇은 어머니를 대통령은 강단 위에서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참사 2주가 지나서야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착석 사과’를 했던 대통령은, 그게 사과냐는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비로소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는 말을 꺼냈다. 엎드려 절 받기까지 근 20일이 걸렸다.
우리가 대통령에게서 보고 싶었던 것은 함께 아픔과 책임을 나누는 공감의 눈물이었지 정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이 아니라 추락하는 여론조사 지지율이었다. 참사를 정치적으로 대했던 것은 희생자 가족도 야당도 아니었고, 정치적 위기의식이 들고 나서야 태도를 바꾼 청와대였다. 이전에도 늘 그래왔듯이 세월호 참사에서도 박 대통령은 국민과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배에 갇힌 승객들을 구조하는데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긴 민심을 구조하는데도 실패한 것이다. 언제나 대통령에게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충성파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국정을 운영하는 탓이다. 국가안전처를 만들고 사후약방문식 안전대책들을 쏟아낸다고 대통령 자신이 말한 ‘무한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사과는 책임을 지는 시작일 뿐이지 결코 끝이 될 수 없다. 책임을 묻는 대통령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무한책임의 끝이 무엇인지, 박 대통령은 그 답을 내놓아야 한다.
* <주간경향>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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