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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리스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

1775111일 아침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상 빈센트 데 포라 성당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만성절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울린 대지진의 굉음이 교회 건물을 무너뜨렸고 도시 전체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3만에서 10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던 국제무역도시 리스본은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신앙의 도시로 유명했던 리스본의 사람들은 재앙 앞에서 큰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하느님의 신성한 계획 어디에 이런 재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비로운 하느님이 이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폐허에 깔려죽게 하고 성난 파도와 화마의 불길로 죽게 할 수 있을까 

리스본 대지진을 목도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더 이상 정의롭지 않았고 자연은 더 이상 자비롭지 않았다. 독실한 성직자로부터 계몽주의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건전한 의심과 이성이 독단적인 종교 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섭리로 주입된 체념적 삶은 인간의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 신은 뒤로 물러서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뢰하는 계몽 국가가 성큼 앞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리스본 대지진을 기록한 건축비평가 니콜라스 시라디는, “리스본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재앙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리스본 지진은 단순히 지각변동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혁명이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당시 재앙 대처를 주도했던 카르발류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통해서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 한 제국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이런 재해를 통해 제국을 갉아먹는 노후한 제도들이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 포르투갈 전역이 황폐해지고 도시들이 파괴된 것을 우리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국가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래서 리스본 대지진은 참혹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근대화 시대를 연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의 재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그로부터 무엇을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앞길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20144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역사에서 무엇으로 기록될 것인가. 리스본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더 이상 국가는 정의롭지 않다는 현실에 눈뜨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 변명하든 간에 국가는 수백명의 생명을 구하는데 나서지 않았고, 그들을 그대로 수장시켜 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책임과 관련하여 여러 해석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는 사고를 낸 것은 선원들과 해운회사였지 정부가 아니었다는 해석도 있다. 정부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으로는 재앙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 선원들과 유병언 일가를 엄하게 처벌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며 여러 안전대책을 쏟아낸다고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가능해질까. 과거의 숱한 경험들은 그런 대증 요법으로는 불가능함을 이미 알려주고 있다. 문제는 보다 근원적인데 있기 때문이다.

성장, 효율, 규제완화와 같은 담론 앞에 사람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리는 국가운영 기조의 대전환이 없는 한 또 다른 재앙이 언제든 갑자기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리스본 대지진을 거치며 유럽이 새로운 세계관에 눈떴듯이, 이제 우리도 국가가 언제든 우리를 지켜주리라던 허상에서 벗어나 이성의 눈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판에 박은 안전대책들이나 쏟아내고 재앙을 덮고 가려는 정권에게서 얼마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18세기에 카르발류가 말했던 우리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국가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과제는 우리에게 그대로 넘어온다. 우리의 몽매함이 있었다면 정직하지도 유능하지도 못한 국가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던 말을 믿었던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혁신해야 할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가 우선하는 사회로 가야 하는 일이다. 다시는 이런 재앙이 없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제는,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나서야 할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