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언론들이 예고편을 내보냈던 대국민담화였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여러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며 공을 들였던 담화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과 향후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지만, 그에 비하면 담화의 내용은 크게 미흡했다.
물론 이전까지 박 대통령이 취해왔던 거리두기식의 냉정한 태도와 비교해보면 몇가지 변화는 눈에 띈다. 참사의 최종적 책임이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는 점은 인정한 것, 해경의 구조작업을 실패라고 규정하며 사고 직후 구조작업을 제대로 했더라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임을 인정하며 사과한 것은 달라진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진작에 나왔어야 할 입장이 이제야 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팽목항에 가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도 이번에는 보여주었다.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다”는 말도 했다. 세상의 시선과는 달리 나도 슬퍼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뒤늦게야 아픔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진정성을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일부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제라도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진작에 그랬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은 많다. 대통령은 자신의 최종적 책임을 말했지만 막상 담화의 그 어느 곳에서도 실제로 책임지는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박 대통령은 참사의 책임과 관련하여 해경조직, 탐욕스러운 기업, 민관유착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무능했던 정부 전체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물론 유가족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각 개편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도 받아들여진 상태이다. 내각 개편은 결국 시점이 문제일 뿐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참사의 전체 과정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몇몇 장관 물러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민의 분노를 확산시켰던 것은 단지 사고 자체만은 아니었다. 구조에 실패하여 사고를 참사로 만들어버린 정부의 무능, 그 이후 대처 과정에서 보여준 책임 떠넘기기의 난맥과 혼란상, 국민의 아픔을 조롱이라도 하는듯한 부적절한 언행들... 이 모든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사람들은 국민에게 보이지 말았어야 할 추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청와대 또한 더하면 더했지 예외는 아니었다.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며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모습, ‘계란 라면’ 발언을 하며 아픈 가슴에 못을 박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부적절한 모습을 내내 드러냈다. 누구보다도 대통령 자신이 공감능력 부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참사 이후 오랜 시간동안 국민의 아픔과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대통령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랬다면 대통령 자신도 물론이지만 대통령을 책임있게 보좌하는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다. 그것이 어디 총리와 장관 몇 사람 물러난다고 될 일이겠는가. 내각 총사퇴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책임을 지고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할 상황이다. 동시에 그동안 박 대통령을 민심과 유리된 불통의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린 주변의 핵심 인사들도 차제에 물러나야 할 일이다.
책임은 사고의 직접적 이유 뿐 아니라 사고가 참사가 되어버린 원인, 침몰 이후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전반적인 대처과정의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물어야 한다. 국민이 분노했던 큰 이유가 공감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대통령의 모습, 불통정부의 모습이었음을 반성한다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정부가 되기 위한 전면적인 국정쇄신, 인적쇄신이 요구되는데,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참사의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KBS등에 대한 보도통제에 나섰던 일에 대한 책임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과와 눈물로 위로하는 모습은 참사 초기에 필요한 일이었는데 이제야 그것을 한 것이다. 지금은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가려야 할 단계인데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책임지는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의 모습은 여전히 회피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어쩌면 자신에게 남아있는 ‘골든 타임’을 그냥 보내버리게 될지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에게 있어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다를 수밖에 없는 의미를 읽지 못한채 말이다.
부처를 없애고 만들고 이동시키고 하는 정부조직개편만으로 이런 재앙이 근본적으로 막아질 수 있을까. 성장, 효율, 규제완화같은 담론들이 사람의 가치를 뒷전으로 밀어내버린 국가운영기조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전환이 없다면 재앙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안전을 말하는 대국민담화가 끝나자마자 원전 세일즈를 위해 서둘러 출국을 했다. 이 역설적인 장면은 무엇을 말하는가. 박근혜 정부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결국 여기까지인 듯하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문제의 종결점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렇게 덮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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