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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 대통령의 적반하장식 인사청문회 탓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사과가 아니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사퇴와 정홍원 총리 유임이라는 사태를 겪은 박 대통령이 아직까지 국민에게 사과의 말을 한 적이 없기에 오늘 수석비서관 회의 자리를 통해 국민에 대한 사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런 관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정반대의 작심 발언들을 꺼냈다.  


박 대통령이 이번 인사실패를 거치면서 얻은 교훈은 결국 인사청문회 제도를 손봐야겠다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 대통령의 오늘 발언의 핵심은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에 대한 주문으로 요약된다. 그는 "국회가 기회를 주는 데 있어서 현 인사청문제도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이어서 "시대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능력과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비난이 반복돼 고사하거나 가족 반대로 무산됐다"고 총리 후보자 인선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창극 후보자 사퇴 파문과 새 총리감 구하기의 실패로부터 박 대통령이 얻은 결론이 고작 그러한 것이었다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문창극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어디 인사청문회까지 가기나 했던 것인가. 국회 인사청문회까지도 못가고 국민 청문회 단계에서 탈락한 것이 문 후보자였다.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좋니 나쁘니 할 문제조차도 아니었던 셈이다  

도대체 문 후보자가 국민여론의 비판 속에서 사퇴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그가 갖고 있는 친일 식민사관과 극우적인 이념적 편향이 총리감으로서는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만 눈감고 모른 척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애당초 부적합한 인물을 기용하여 국민이 외면하게 만든 자신의 잘못은 모른척 하고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비난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가며 마치 애궂은 사람을 흔들어서 낙마시킨 듯이 말하고 있다. 문 후보자를 향한 국민여론의 실체를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한채 인사청문회 탓을 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정말 고집스러운 불통 대통령의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국민 상식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 사고를 가진 문창극 후보자를 기용하여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국가대개조의 약속을 저버리고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책임은 누가 뭐래도 박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의 말 한마디 없다. 왕조 시대의 제왕도 이런 식으로 나라를 다스리지는 않았다.  

과거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 인사청문회제도를 강화하고 참여정부 인사들을 향해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그 칼을 휘둘렀던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그 인사청문회제도가 문제가 있다며 인사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인사청문회제도가 최선의 것은 아닐 수 있다. 후보지명 단계에서의 철저한 사전검증을 전제로 한다면, 여러 개선책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인사청문회 개선 얘기부터 꺼낼 때가 아니다. 먼저 거듭된 인사실패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그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질장의 책임을 묻고, 시스템에 의한 인사체계를 확립한 이후에 비로소 인사청문회 개선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박 대통령에게 미래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