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대선정국 무렵부터 안철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스탠스를 취해왔다. 짐작들 하시겠지만, 여러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런 입장을 취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가 갖고 있었던 확장성은 야권이 놓쳐서는 안될 자산이라고 여겼다. 갈수록 야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한다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안철수 에너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특히 민주당을 넘어서는 새로운 야권질서 창출에 그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뛰어들었다. 그러나 당시 야당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으며 그를 밀어냈고 결국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우리가 ...있는 곳이 그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동네는 아님을 전하고 싶었다. 그도 한번은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하나는, 지난 대선 당시 우리 역사의 아픔과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눈을 뜨는 그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민주화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었느냐고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늦게라도 눈뜨며 역사의 편에 서겠다고 다가오는 그가 고마웠다. 나는 그럴 때 손을 내밀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기본 덕목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기대의 시간은 짧았고 회의의 시간은 길었다. 국회의원이 된 안철수에게는 여전히 뉴스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열려있었지만 그는 침묵했다. 화석화된 구호가 되어버린 새정치 말고, 우리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얘기들을 하지 않았다. 안철수는 새로 태어나지 못한채 그렇게 2012년에 멎어 있었다. 그래도 안철수 에너지가 2017년 대선, 그것이 아니면 최소한 2016년 총선까지는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철수 에너지의 소진은 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야당세력을 다시 2012년의 시점으로 되돌려놓는 재앙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은 없는 법. 새정치연합 대표직에 오른 이후 그는 날개없는 추락을 하게 된다. 물론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당내 계파정치의 논리가 그의 페이스를 흔들어 놓은 것도 있지만, 그 탓을 하기에는 그 자신이 김한길 대표와 함께 범한 오류와 과오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쩌면 고비 때마다 그렇게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하는지... OTL... 결과적으로 정치 신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자리에 올랐던것이 화를 자초했던 셈이다. 그의 정치적 내공은 생각보다 쉽게 바닥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내가 안철수에 대해 입을 닫기 시작했던 것이 새정치연합 출범 직후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그가 완강히 고수하던 때였던 것 같다. 안철수의 불통이 박근혜의 불통과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려웠다. 2012년 정권교체 실패 상황에 대해 안타까웠던 미련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는 자책을 하며 마음을 접었다. 다만 사람이 가장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 때, 가슴에 못박는 또 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차라리 묵언을 택했을 뿐이었다.
안철수의 퇴진을 보며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올 것이 온 것일 뿐이라는 냉정한 말로는 다 담기 어려운 큰 아쉬움도 자리한다. 그가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진 그 좋은 기회를 잘 살리는 책임을 다해주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진보진영의 텃세를 탓하기에는 그 자신이 보여준 것이 너무도 없었다. 그가 다시 정치를 시작한다면 다른 누구의 탓도 하지 말고 깨끗하게 자신의 탓임을 인정하는 지점에 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안철수의 정치적 앞날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거품이 걷히자 그냥사라져간 정치인으로 끝날 수도 있고, 재기를 통해 정치적 역할을 다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리 그에 대한 기대가 실망이 되어버렸다 해도, 다시는 볼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악담의 진영에 합세할 사람은 아니다. 그가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서 시련의 과정을 이겨내고 다시 야권의 자산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무엇에 도전해야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말이다. 그것이 가능할지 여부는 물론 오롯이 그 자신의 몫이다.
그가 정치를 포기하지 않고 언제가 되든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두가지를 권하고 싶다. 첫째,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원망을 버릴 것. 자신만을 성찰할 것. 그래야 달라질 수 있다. 둘째, 그 시작은 우리 시대의 아픔의 현장에서 할 것. 안철수를 띄웠던 것이 공감 콘서트였던 것 같은데, 정작 그는 공감에서 실패하여 뒤로 물러서게 된 것은 무척 역설적이다.
너도나도 안철수 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그동안 그가 했던 역할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정권교체 열망에 불을 붙이는 전기를 마련해준 것, 정치에 등돌렸던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했던 것은 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잊혀진 얘기이겠지만.... 오늘 실패했다고 해서 야권의 현실에 대한 모든 책임이 안철수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도 야권의 무능력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 안철수가 빠져버린 상태에서는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할 위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의 퇴진을 지켜보며 나 또한 묵언이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어,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이런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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