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동굴 속에 죄수들이 포박돼 있다. 이들은 앞만 보게 돼 있고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 자신들 뒤쪽에서 타오르는 불빛으로 맞은편 벽면에 투영되는 그림자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벽면에서 보는 그림자들을 실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통해 동굴 밖으로 나와 빛을 보고 세상의 진짜 실물들을 보게 되었다. 자신은 행복했지만 동료 죄수들을 불쌍히 여긴 이 사람은 다시 동굴로 내려갔다. 그러나 동굴 밖 세상 이야기를 전해들은 동료 죄수들은 그가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버려서 왔다고 하면서 비웃었다. 자기들을 풀어주고 인도해가려는 그를 죽여버리려고까지 했다. 플라톤의 「국가」 제7권에 나오는 대화 내용이다. 여기서 동굴 밖 세상은 이데아(Idea)이고, 동굴 밖 세상을 보고 그 놀라운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려주려고 다시 동굴로 들어간 사람은 철학자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노력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라고 굳게 믿는,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어리석은 동료들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가운데서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감각에만 의존한 채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진짜 세상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동굴 밖으로 나와 지성의 눈으로 진짜 세상을 보려 할 것인가.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을 포기한 채 나를 위해 돌아온 동료의 손을 뿌리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본 진짜 세상으로 동료들도 데려오기 위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이처럼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온갖 미디어들은 그 일들을 보도하고는 있지만, 우리에게 전해지는 내용들은 많은 경우 표피적이고 감각적이다. 특히 종편 방송들은 온종일 선정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 방송을 통해 나오는 이런 허접스러운 뉴스를 보고 세상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을 내려놓고 있다가는 언제든 바보가 될 수 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판단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갇혀 그냥 주는 대로 먹이를 받아먹는 짐승 꼴이 되기에 십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단지 눈에 보이는 대로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가를 우리가 의심하고 질문을 던질 때,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할 때 비로소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은 사치인가.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과는 무관한 일인가. 물론 다들 먹고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대학생들은 취업 걱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내려놓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되어버리면 인간으로서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되고, 삶의 무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험한 세상 나를 지탱해줄 힘은 결국 아무것도 없게 된다. 생의 행로를 길게 본다면 어떤 것이 과연 길게 사는 삶의 태도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삶과 세상 전부는 아니다.
“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라는 교육부 장관의 말과는 달리 우리는 어렵고 힘들수록 인문학적 성찰을 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묻고 또 물으며 인생의 행로에 나서야 한다. 스스로에게 성실하게 묻고 진심으로 답해나간다면 어느덧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삶의 근육이 단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춘들이여,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며칠 밤이라도 지새우기 바란다. 토익점수만으로는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가슴 속의 불은 끌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회의하고 고뇌하며 자기 생의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 세상일들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내 삶의 힘이 돼줄 것이다. 건투를 빈다.
* <서강학보>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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