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연대 나온 남자다. 학부도 대학원도 모두 연세대를 나왔고 박사학위도 연세대에서 받았다. 연대 나온 것을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아왔다.
그런데 정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 생겼다. 연세대학교 총동문회가 ‘2010년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을 극우 인사인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에게 주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평소 서정갑씨의 무분별한 극우적 행동,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탈취해간 반인륜적 행동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가 연세대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헐~ 그가 연세대 동문이었다니, 대학교육을 받았어도 사람이 저럴 수가 있구나. 우선 드는 생각이었다.
그 다음으로 놀란 것은 그런 인물을 ‘자랑스러운 연세인’으로 선정한 연세대 총동문회의 몰지각함이었다. 그래도 국내 명문대학이라는 연세대를 대표하는 동문회인데, 도대체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 정도의 분별력도 없을까. 정말 연세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는, 차마 믿기어려운 소식이었다.
당장 연세대 동문들로부터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한겨레신문>에 실린‘서정갑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연세인 일동’ 명의의 광고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청앞 시민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영정을 탈취해간 서정갑이라는 사람이…연대 출신임을 혐오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자랑스러운 연세인’으로 선정되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했다.
연세대 ‘80년대 총학생회장단 모임’은 “서 본부장은 시위 현장에서 가스총을 발사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훼손하는 등 반민주ㆍ반인륜적 행태를 보였다”며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대다수의 연세인에게 서씨의 수상은 치욕 그 자체”라고 비난했다.
여기서 이 얘기를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재론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총동문회라는 곳은 도대체 무엇하는 곳인가, 그 질문을 던지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과거에 원하지 않게 동문회보를 받아보던 때가 있었다. 몇 번 내용을 살펴본 적이 있지만, 회보는 언제나 장관, 국회의원, 대기업 대표 같은 잘나가는 사람들 소식으로만 채워져있었다. 그렇지 못한 평범한 동문들의 이름은 동문회비 낸 사람들 명단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회보에 나오는 동문회 소식을 봐도 행사에 참석한 고관대작들의 명단으로 채워져있었다.
우리 동문회는 왜 내세울 것은 없지만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많은 동문들의 이야기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일까. 총동문회라는 곳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동문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곳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더 이상 회보를 보지 않았다. 물론 동문회비도 내지 않았다. 나와는, 아니 대다수의 동문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곳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가끔 동문회 명부가 나왔다고 구입해달라고 전화가 와도, 나는 아무런 부담 의식하지 않고 단호히 거절한다. 동문회가 우리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서정갑씨 수상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무리 잘나가는 동문들만의 정서를 대변하는 총동문회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동문들이 ‘수치스러운 연세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자랑스러운 연세인’으로 둔갑시키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고관대작의 지위에는 못몰랐어도,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동문들에게 ‘자랑스러운 연세인’ 상을 주는 것이 백만배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동문회’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번 일은 그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만들 것 같다.
아마도 개그맨 박성광이 이 광경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이러지 않을까.
“동문회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나. 1등만 기억하는 ×××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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