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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무총리실이 망쳐버린 검.경 수사권조정

오랜 시간 공들이며 논의해왔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문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당초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 혹은 수사재량 확대를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논의되어 온 것이었다. 그런데 국무총리실에 최종적으로 내놓은 강제조정안은 정반대. 경찰에 대한 검찰의 통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지난 23일 국무총리실이 내놓은 조정안은 그동안 경찰이 자율적으로 수행해온 내사 권한을 인정하되 중요 내사사건의 경우 사후적으로 검찰의 통제를 받게 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내사단계에서 계좌추적 등을 벌였다가 범죄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자체 내사종결을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강제조사나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내사사건은 검찰이 사후에라도 보고를 받아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내사를 하고도 자체 종결했다며 관련 기록조차 검찰에 공개하지 않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검찰의 요구가 수용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검사의 통제가 강화되는데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검사나 검찰직원이 관련된 비리 수사는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경찰의 요구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역시 경찰은 수사가 진행 중이더라도 검사나 검찰 수사관, 전직 검사 등의 혐의가 나오면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이 사건을 ‘가로채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이를 막을 장치가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 불문하고 총리실의 조정안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국무회의 심의과정을 거친다"며 "12월 중순 예정된 국무회의 심의과정에서 잘못 조정된 부분은 시정토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원희룡 최고위원도 "정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며 "형사개정법의 개정 취지에 맞게 합리적인 조정안을 갖고 조기에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은 "총리실의 검경수사권 조정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이라며 "여야간 합의한 형사소송법 취지는 경찰에 재량권을 주는 것인데 오히려 검찰의 지휘권한을 강화하는 안이 됐다. 재검토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국무총리실이 어떻게 검.경 수사권조정의 당초 취지와는 정반대인 이같은 조정안을 밀어붙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검찰의 주장에 휘둘린 것인지, 아니면 수사권조정 문제에 대한 총리실의 이해 부족인지.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총리실의 돌출적인 조정안으로 인해 대타협을 눈 앞에 두었던 검,경 수사권조정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설혹 이대로 대통령령이 확정된다 해도 경찰의 반발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 수사권조정 논란은 제2라운드로 접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조정역할을 맡은 총리실이 지난 4개월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조차 없이 독단적으로 이같은 조정안을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렇게 논란거리가 되는 조정안이 느닷없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총리실은 조정안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궁색하다. 지금 다시 손을 대면 검찰에서 또 반발한다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총리실은 이제라도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를 망쳐놓은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대통령령의 내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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