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 사건을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모 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리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조만간 발표하기로 하고 세부 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윗선이나 범행 전날 술자리를 함께한 인물들의 연루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공 씨의 단독범행을 상상하기 어려운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이같은 결론을 내릴 경우 상당한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개요도 (사진= 유성호)
우선 경찰은 박희태 국회의장실 전 의전비서 김모 씨를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규정하여 그를 혐의선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런데 김 씨는 선거 전날 밤 공 씨를 룸살롱 술자리에 초대한 인물로, 범행 당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5차례나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바로 전날 밤 술자리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더구나 업무관계상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범행이 막 진행중이던 아침 시간대에 5차례나 통화를 한 사실은 연루 의혹을 높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김 씨에 대한 더 이상의 수사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김 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 경호비서였다고 한다. 김 씨는 이 대통령 후보 시절 경호를 맡았을 정도로 여권 핵심 인사들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의전 비서인데다 진주 출신으로 최구식 의원 비서로 일한 적이 있다. 결국 최구식 의원을 매개로 한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최구식 의원도, 김 씨도 수사선상에서 사실상 제외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력 1년 2개월의 9급 비서가 이같은 범행을 과연 혼자서 기획하고 저질렀겠느냐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이다. 당연히 상사인 최구식 의원의 지시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경찰은 가장 의심이 가는 최 의원에 대해서조차 조사를 하지 않았다.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그의 말만 믿어주고 있는 모습이다.
경찰청 수사팀은 당시 서울시장 선거 진행 상황에서 당내 분위기나 공격 지시자의 이해득실로 볼 때 이번 사건에 한나라당 고위직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작게 보고 있다고 한다. 디도스 공격이 성공해 여당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해당 고위직 당직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범행이 밝혀질 경우 입을 수 있는 의원직 상실 등 타격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윗선이 연루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입장을 너무도 잘 이해해주려는 애정이 담긴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청은 공 씨가 8일 새벽 조사에서 심경을 바꿔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며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은 사건을 공 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리고 검찰로 송치할 것으로 보인다. 배후를 규명하는데 소극적이었던 부실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동안 범행 일당들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공 씨가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도 배후를 보호하기 위한 시간끌기 작전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더구나 공 씨가 체포되기 전 고향의 친구와 "내가 하지 않았는데 윗사람이 책임을 지라고 한다"는 내용의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하고 있다. 공 씨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에 사는 이모 씨는 "지난 3일 오후 사적인 일로 만난 공 씨의 친구 윤모씨가 친구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윤 씨가) 직접 (공 씨와) 통화하지는 않았으며, 전화를 받은 친구들이 '너가 하지 않았으면 책임을 지지 마라'고 하자 대답을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 씨 스스로가 배후가 있음을 시사한 중대한 증언이다.
이런데도 경찰이 배후가 있는 조직적 범행의 가능성을 일부러 닫아놓고 끝내 공 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린다면 경찰은 부실수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국정조사나 특검에 의해 사건의 숨겨진 진상이 드러날 경우 경찰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경찰 스스로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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