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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분노하되, ‘절제된 분노’를 인간이 분노한다는 것은 자존감과 정의감을 갖고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인간은 모욕감을 느꼈을 때, 혹은 정의가 훼손당하는 현실을 접했을 때 분노하곤 한다. 그러하기에 분노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모진 세월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분노의 감정은 일상화되어버린다. 세월호에 탄 어린 것들을 수장시켜버린 정부의 무능함에, 그 진상과 책임을 가리는 일조차 회피하는 권력의 행태에 우리는 분노한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막기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사이버 검열을 하겠다고 나서고, 국민의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들여다보겠다는 오기에 또한 분노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존재를 욕되게 만들기에 우리는 매일같이 분노하며 살아가고 있다.. 더보기
대통령 헬스기구까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이유 당 태종과 신하들이 정사를 논한 기록을 오긍(吳兢)이 정리한 제왕학의 고전 (貞觀政要) 제3권 6편 ‘군신감계’(君臣鑒戒)에서는 ‘군주와 신하가 거울삼아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정관 3년에 태종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주와 신하는 본래 혼란한 세상을 함께 다스리고 안위를 공유해야 하오.만일 군주가 충성스럽고 선량한 간언을 받아들인다면, 신하는 정직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소.이것은 군주와 신하가 의기투합하기 때문이며, 옛날부터 중시되었던 것이오.만일 군주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신하 또한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면서 나라가 위급하여 멸망하지 않을 것을 바란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오.“ 군주와 신하가 서로를 거울삼아 경계하며 세상을 다스려야할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201.. 더보기
대북전단 살포 방치, 박근혜 정부의 불통 리더십 결국 남북 2차 고위급 접촉은 무산되었다. 대북전단 살포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해왔던 북측은 고위급 접촉과 ‘삐라’ 살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했지만, 정부는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접촉은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 최고위급 실세들의 인천방문을 계기로 어렵게 마련된 남북대화의 기회가 대북전단 문제 때문에 무산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광경이다. 탈북자 단체들이 살포하는 대북전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남북관계의 개선보다 중요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인지 좀처럼 납득이 되지를 않는다. 국민의 안위와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는 남북관계가 몇 사람의 극단적인 돌출행동에 의해 흔들리고 좌지우지 되는 상황은 분명 정상.. 더보기
공무원 연금 개혁, 야당과 공무원노조도 대안갖고 나서야 새누리당이 공무원 연금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새누리당이 밝힌 개혁안의 기조는 '하후상박' 원칙 아래 국민연금과 장기적으로 형평성을 맞추는 방향으로 공무원 연금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안은 일단 정부안에 비해서는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2080년까지 정부안보다 100조원의 재정절감 효과를 더 예상한다는 것이고, 특히 국민연금에 있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도입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소득이 낮을수록 납입액 대비 수령액을 더 유리한 구조로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최근 3년간 공무원 전체 평균소득보다 더 많이 버는 공무원은 더 깎고, 평균보다 못 버는 공무원은 덜 깎는 방식이 된다. 그동안 공무원 연금의 경우 국민연금과 달리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소득이 .. 더보기
나는 이렇게 무서운 대통령이 싫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의 통치 기간 동안 권력의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5.16 쿠데타의 동지였던 김종필이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를 떠난 것도, ‘박정희교 신도’를 자임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도, 박정희를 그림자처럼 보좌했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숙청당했던 것도 모두 그들이 2인자 행세를 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해왔던 인물이라 해도 그가 ‘포스트 박정희’를 꿈꾸며 세력을 구축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제거하곤 했던 냉정한 박정희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이 스타일을 빼어닮았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박근혜계’를 이끌었던 시절에도 그는 2인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주요 현안에 대한 박근혜 대표 혹은 비대위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