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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재인에게 출마의 ‘독배’를 권하는 이유

경남 양산의 국회의원 재선거는 결국 문재인 변호사가 출마하지 않은 가운데 치러지고 있다. 후보등록을 앞두고 부산지역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그의 출마 결단을 촉구하며 천막농성까지 벌였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결국 민주당에서는 당초 예정대로 송인배 후보가 출마하여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와 승부를 겨루고 있다.

그동안 문 변호사에 대한 출마권유는 여러 곳에서 있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친노진영 일각, 그리고 부산경남지역의 민주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마를 권유하고 설득했다. 그러나 문 변호사는 초지일관,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이번 재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문 변호사의 출마를 권유했던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 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최측근이었다는 점, 그러하기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아파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모아낼 수 있으리라는 판단,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의 박희태 전 대표를 꺾는다면 대단히 상징적인 정치적 장면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등이 깔려있었다. 또한 마침 문 변호사가 양산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그의 출마 명분과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 권우성

실제로 문 변호사가 출마했을 경우 그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를 감안할 때 충분히 당선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보여준 강직한 이미지, 언제나 흥분하지 않고 절제하는 모습 등은 ‘친노’에 대한 호.불호에 상관없이 좋은 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출마권유에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변함없이 정치를 안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사실 문 변호사에게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어 청와대를 나온 이후 그는 자신은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정치라는 것이 거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또한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양감사도 자기 하기 싫으면 그만인데, 누가 뭐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문 변호사가 그렇게 의리를 지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운의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민주정부 10년동안 정착되었던 우리 민주주의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은 지리멸렬,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정권세력이 정국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무기력한 야당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은 체념과 절망 속에 빠져들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주행에 대한 비판이 그렇게 계속되었지만, 막상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는 여권 주자들이 1, 2, 3위를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많은 국민들은 그래서 새로운 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전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야 하는지는 앞으로 더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문재인 변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정치하기를 싫어하고 뜻이 없다고는 하지만, 앞으로의 정국상황이 자신을 정말 절박하게 요구한다면 대의를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는 것을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박원순 변호사의 입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민운동세력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희망과 대안‘이라는 조직을 만드는데 나서고 있다. 자신은 정치를 안한다고 손사래를 쳐왔던 박 변호사이지만, 지방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를 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참여의 시선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부담을 무릅쓰면서라도 박 변호사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우리의 정국상황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 변호사가 갖고 있는 우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장례기간동안 그는 누구보다도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가슴 속으로 그만큼 분노한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그리고 그럼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국정을 운영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문 변호사 또한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을 것이다. 문 변호사가 자신의 출마 대신, 송인배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선거에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내년이, 내년보다는 3년 뒤가 더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 민주정부 10년의 성과가 흔들리는 위기의 상황에서는 문재인 변호사도 자신의 뜻만 고집할 때가 아닌 듯하다. 어차피 양산 재선거는 지나갔고, 내년에는 더 큰 판이 열리게 된다. 그에 대한 부산시장 출마 권유가 다시 있게 될 것이다. 문재인 개인으로서야 ‘독배’가 되겠지만, 그가 더 큰 것을 위해 정치참여의 ‘독배’를 들기를 간곡히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