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 재보선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패배로 끝났다. 한나라당 내 일각에서는 그 정도면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한나라당의 일방적 패배였음이 명확해진다.
한나라당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두 곳에서 모두 패했다. 충북 4개군에서는 참패를 당했다. 경남 양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최근까지 여당 대표를 지냈던 박희태 후보가 야당의 정치신인 송인배 후보에게 천신만고 끝에 이기는 고전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승부는 외형적으로는 한 석 차이에 불과했지만, 내용 면에서 한나라당은 완패한 것이다.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재보선에서는 전통적으로 여당이 불리하다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일방적 우세가 점쳐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야당의 힘이 약화된 환경 속에서 야당의 선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민주당에서는 손학규 전 대표, 김근태 전 장관 등 거물들의 출마가 무산되어 힘든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내건 견제론이 힘을 받았고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일까. 집권세력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향해 민심을 대변하며 가교역할을 하지 못해 여당으로서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러나 야당의 견제론에 유권자들이 호응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이 여전히 일방주의적이고 독선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내건 중도실용의 기치 덕분에 국정지지율은 한동안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의 결과는 구호로만 있고 콘텐츠는 없는 중도실용의 효과가 그리 오래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 정운찬 총리는 사회통합을 그렇게 외쳐왔지만 막상 달라진 것은 없다. 무성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중도실용과 사회통합의 구체적인 내용이 가시화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세종시 수정 논란이 빚어졌고, 김제동-손석희 씨에 대한 퇴출이 있었다. 중도실용과 사회통합의 약속을 저버린 정권의 일방주의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그에 성난 젊은 유권자들이 재보선 투표장으로 가서 여당을 향해 경고의 의사를 표출한 것이다.
집권세력으로서는 이번 재보선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민심의 경고를 번번히 무시하고 지나가면 정권과 민심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도 여당도,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의 급상승에 도취되어 있던 청와대는 여당의 재보선 패배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을 때도 그러했다. 민심이 선거를 통해 여당을 심판하는 상황이 반복되어도 청와대의 표정은 너무도 의연해 보인다.
선거패배의 당사자인 한나라당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선거에서 민심의 외면을 받은 여당인데도 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모아지지 않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이번 결과를 겸손하게 받들고 더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노력하겠다는 것인지 의례적인 수사로만 들린다. 당내 소장파로부터 쇄신 요구가 한두 차례 있었을 뿐, 더 이상 선거패배에 대한 진단이나 반성 같은 것에 매달리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권 전체의 쇄신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오히려 지난 4월 재보선 패배 당시보다도 크게 약화된 모습이다.
재보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 없이 그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민심 둔감증이다. 선거에서 패배하고 민심의 경고가 확인되었는데도 이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그대로 넘어가는 안이한 태도이다. 정부와 여당이 재보선 패배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그냥 버티기로만 일관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말로 커다란 어려움을 맞게 될지 모른다.
여권이 사는 길은 구호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정기조의 쇄신을 이루어내는 데 있다. 그것만이 여권도 살고 국민도 사는 길이다. 그러나 선거패배에도 아무런 성찰 없는 여권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그 길을 찾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걱정이 든다.
* 이 글은 <국제신문> 11월 3일자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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