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점차 정치인들 하는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다. 지난번 미디어법에 대한 결정이 야당에게는 명분을 주고, 여당에게는 실리를 준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대두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헌재가 미디어법 결정에 관한 논란이 많은 것에 대해 ‘언론책임론’을 제기하여 이 역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오늘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하철용 헌재 사무처장은 헌재의 결정이 무책임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헌재가 좌고우면했다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하 처장은 "신문들이 `권한침해는 인정했지만 유효'라고 보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는데 이번 결정 어디에도 `유효'라고 한 부분은 없다"면서 "언론이 이번 결정에 대해 `간통은 했어도 죄는 아니다'는 등의 엉뚱한 비유를 갖다 대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언론이 본분을 잘 이행해 적어도 100쪽에 달하는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보고 그대로 보도만 해줬어도 이런 사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헌재가 야당이 제기한 미디어법 무효청구를 기각한 것은 현실적으로는 ‘유효’ 결정을 내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이제와서 ‘유효’라고 한 부분은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헌재가 위법성을 인정했음에도 국회의장이나 여당이나 미디어법 위법성 해소를 위한 재논의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헌재로서야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을 뺄지 모르겠지만, 애당초 구속력없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문제였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무효화할 수는 없다는 헌재의 결정은 국민들의 사고와 가치에도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그리고 나서 이제 그 탓을 언론보도에 돌리는 것은, 정치인들이 흔히 언론보도를 핑계로 빠져나가는 정치적 발뺌과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국민에게 신뢰받아야 할 헌재라는 기관을 이렇게 비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헌재 자신이 국민의 법상식과 충돌하며 혼란을 야기하는 결정을 내린 마당에, 헌재라고 해서 비판의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헌재는 더 이상 비겁한 ‘언론책임론’을 입에 담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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