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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 대통령의 ‘내복 입기’ 권유가 거북한 이유

이명박 대통령의 내복 예찬이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 대통령은 내복예찬을 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나는 내복도 입고 조끼도 입었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정운찬 국무총리는 “저도 그랬다. 앞에 서 있는 분들(국무위원들- 필자주) 대부분 내복과 조끼를 같이 입었다”고 화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나는 며칠 전부터 내복을 입었는데 처음엔 몸이 좀 불편했는데 며칠 입어보니 괜찮다”며 국무위원들에게 내복입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실제로 어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대부분은 일제히 내복과 조끼를 입고 나타났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내복 예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내복 착용의 효용성을 강조하며 청와대 참모들에게 내복 입기를 권장했다. “내복을 입었더니 옷을 여러 벌 껴입는 것보다 바깥의 추운 날씨를 견디기가 훨씬 쉬웠다”고 했다 한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지난 해 겨울에도 이 대통령은 자신도 내복을 입고 다닌다며 최소한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은 내복을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겨울만 되면 이 대통령은 내복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물론 좋은 취지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내복을 입는 것은 좋겠고, 특히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하자는 취지는 구태여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환경운동단체에서도 내복입기 캠페인 같은 것을 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도 유독 이 대통령의 내복 입기 권유가 한편으로 거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장면 자체가 너무도 희극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내복 예찬에 자리를 깔아주기 위해서 총리도, 국무위원들도 다들 내복을 입고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나에게는 한편의 코미디처럼 받아들여진다.

이 뿐이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이명박 대통령 명의의 선물로 전달할 수만벌의 내복을 주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전국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범국민 내복 입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정부가 나서서 범국민적인 내복 입기 운동을 벌일 태세이다. 이러면 아마도 공무원들은 이번 겨울에 모두 내복을 입고 출근해야 할텐데, 이러다가 부처별로 속옷 검사까지 하게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복 입으면 겨울철 나기가 좋고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내복좋은거야 이 대통령 보다는 내가 더 잘 안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나도 추운 날이면 종종 내복을 입기 때문이다. 추운날 내복에 대한 고마움은 서민층으로 갈수록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겨울철 칼바람 부는 정류장에서 버스라도 오랫동안 기다리려면 두툼한 내복이 최고이다. 집안에서도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내복을 입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추운 날에도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복 입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물론 젊은층에서는 어쩐지 내복을 입는 것에 대한 거부정서들이 있지만. 먹고사는 것이 우선인 많은 사람들은 이미 내복 입기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이 나서서 내복을 입어보았더니 좋더라는 식의 얘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대통령만 이제 알았다는 느낌마저 줄 수 있다.

공직자들에게, 결국은 국민에게 내복 입기를 권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떠올리는 근본적인 물음은 “국가가 과연 국민의 일상생활에 어디까지 개입해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대통령이, 그리고 정부가 굳이 내복 입기에 대한 선택에까지 관여해야 하는 것일까. 겨울철에 내복을 입든 아니면 옷맵시를 고집하며 끝내 거부하든, 그런 것은 개인의 선택에 맡기면 되는 일 아닐까. 내복을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개인생활의 영역에까지 국가가 나서서 범국민적인 운동을 벌이겠다는 발상에 권위주의의 유령을 보는 듯한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내복 입기 뿐이 아니다. 근래 들어 이 대통령은 거듭해서 자전거 타기를 권유하고, 막걸리 마시기를 권유하고 있다. 물론 좋은 뜻으로 이해하고, 실제로 자전거 타는 것, 막걸리 즐기는 것 다 좋은 일임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대통령이 자꾸 나서서 개인의 교통수단에, 개인의 음주생활에까지 관여하는 것 같은 모습에는 거부감이 든다. 자전거 타면 좋은 것, 막걸리 마시면 좋은 것, 그것도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렇게 못하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꾸 국민을 상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가르치는 것처럼 안했으면 좋겠다.

혹여라도 정치적 시선으로 이 대통령의 순수한 발언들을 비판한다고는 생각 안했으면 좋겠다. 내복 입기 얘기를 이 대통령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했어도 나는 같은 얘기를 했을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생활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대신 국가는 개인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주력하면 된다고 말이다.

나는 대통령이 말해서가 아니라, 나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내복을 입어왔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바라건대, 그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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