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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 대통령, ‘김인규 KBS 사장’ 임명 거부해야

“‘대통령의 사람’이 KBS 사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2003년 3월 24일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의 사람’을 다시 KBS 사장으로?>에 나온 말이다. 당시 KBS 이사회가 노무현 후보의 언론 고문을 지낸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하기로 한데 대한 입장이었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새 KBS 사장 적격자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언론고문이다. 그런 인물이 사장에 임명될 경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고 앞으로 권언유착을 끊겠다는 노 대통령의 약속이 빈말이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과 방송가의 우려다. 정권의 잘못된 주문이 있을 경우 이에 맞서 저항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수언론 뿐 아니라 KBS 노조를 비롯한 언론계 안팎의 비판이 확산되는 가운데 결국 서동구 사장은 취임 8일만에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사람’은 공영방송의 수장이 될 수 없다는 선례가 되었다.

김인규 KBS 사장 후보자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뒤 YTN에서 비슷한 일이 생겨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방송담당 특보를 지낸 구본홍씨가 YTN 사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역시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확산되었고 YTN 노조는 구본홍 사장과의 오랜 투쟁을 벌어야 했다. 결국 구본홍 사장은 YTN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채 지난 8월에 사퇴했다.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보도전문채널에도 ‘대통령의 사람’이 사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이미 있었다.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방송에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뛴 ‘대통령의 사람’이 사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이것은 막 자리잡혀가는 불문율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KBS 이사회는 KBS 신임 사장에 김인규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을 선정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를 맡아 공신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지난 해 8월 사장 공모 때 지원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모에 지원을 했고 사장으로 임명되게 되었다. 과연 무엇이 달라진 것이 있는 것일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인규 회장이 여전히 ‘대통령의 사람’이라는데 의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보다도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얘기는 이번 과정에서 더 많이 나왔다. 이렇게 논란이 되었던 문제는 그대로였지만, 김 회장은 지원을 했고 여당측 이사들은 몰표를 통해 그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

KBS 이사회의 여당측 이사들은 김 후보를 과거의 관행보다는 공영방송으로서 KBS 위상을 회복시킬 비전과 철학을 갖추고,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미래의 방송산업 발전을 선도할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과연 김인규 회장이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언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명박 정부 혹은 여권 쪽으로부터 들어오는 각종 주문과 간섭들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김인규 회장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KBS 이사회의 여러 구름잡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김인규 회장이 부적격자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이다.

KBS 이사회는 서동구, 구본홍 파문의 교훈에 눈감고 또 다시 ‘대통령의 사람’을 KBS 사장으로 들어앉히는 일을 저질렀다. 또 다시 서로가 값비싼 갈등의 비용을 치러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방송장악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도 시원치않을 판에, KBS 이사회는 이렇게 다시 불을 붙이는 일을 저질러야만 했을까.

KBS 이사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방법은 남아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KBS 이사회가 사장 재공모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 KBS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지킬 초당파적 인물을 사장으로 임명하는 길이 있다. 이 대통령은 KBS 이사회의 임명 제청을 거부해야 한다. 자신을 선거에서 도왔던 공신을 KBS 사장에 앉혔다는 얘기를 듣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다 같이 소모적인 갈등의 늪에 빠지는 사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이 대통령이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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