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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에는 진보정당이 왜 이리 많을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정당’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정당들의 이름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자신을 진보정당으로 규정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재 창당작업을 진행중인 국민참여당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계승에 방점이 두어진 국민참여당은 민주당보다는 진보적인 정책노선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중간 쯤 되는 위치로 파악된다. 국민참여당 스스로 자신들이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또한 창조한국당의 경우도 진보정당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그동안 문국현 전 대표의 영향으로 사회경제정책 등에 있어서 진보적인 성격을 보여왔지만, 전통적인 진보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사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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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분당 때의 사과 장면 ⓒ 유성호

각 정당들의 정책노선을 뜯어보면 이렇게 차이가 있고 저마다의 색깔이 있지만, 그것은 정치에 몸을 싣거나 아니면 정치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대개의 경우 ‘진보적인 정당’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이들 정당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중요 선거를 앞두고 진보적인 정당들이 이렇게까지 난립하는 경우도 드물었던 것 같다. 나는 각 정당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정치노선과 정책노선을 존중하고 그 차이가 갖는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역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진보정당의 난립, 나아가 야권 내부의 난립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생겨나고 있는 듯하다. 진보대연합론이 그것이다. 민주당을 제외한 4개 진보정당들이 내년 지방선거와 2012년 대선에서 연합 내지는 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역시 진보정당들이 지금처럼 난립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는데 대한 부담, 반대로 진보정당들이 연합후보를 냈을 때에 대한 기대가 섞인 제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은 진보대연합론에 대해 적극적인 반면,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은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새로 시작하는 국민참여당은 기존의 진보정당들과 따로 연대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연대 또한 여전히 쉽지 않은 상태이다. 두 세력간의 분열을 가져왔던 노선갈등과 불신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혹 재통합이 이루어진다 해도 과거와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을 상황이다.

진보대연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으로는 각 세력이 각개약진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진보적인 정당들의 각개약진이 그들의 공멸, 나아가 야권 전체의 타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그들 사이에서야 서로가 연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고 하지만, 막상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무엇이 다른지 쉽게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강기갑과 노회찬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국민참여당이 표방하는 내용이 기존 진보정당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아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한국사회의 이념지형이 과거와는 크게 변화했다고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난립이 상관없을만큼 진보정치세력의 파이가 커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조성된 환경은 진보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이전보다 좁혀놓고 있다. 그런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진보적인 정당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진보 내부에서의 미세한 차이를 갖고 독자적인 세력화를 고집해야 할만큼 진보의 파이가 큰 것은 아닌데 말이다.

유권자들로서는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이들 진보정당 뿐 아니라 다른 정당들 포함해서, 도대체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해야 하는 것일까. 당장 나부터도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그같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당사자들이 책임있게 정리해주어야 한다.

오늘 드러나고 있는 진보의 난립이 진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나아가 2010년과 2012년의 ‘큰 일’에 장애가 되는 일이 없도록, 당사자들의 지혜로운 행보를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