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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시민 대선후보론이 아직 성급한 이유

유시민 전 장관(이하 유시민)의 대선관련 발언이 민감한 반응을 낳고 있다. 유시민은 어제 열린 국민참여당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의 축하 인사말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통령을 다시 만들자"면서 "제가 할 수 있으면 하고, 제가 못하면 할 수 있는 사람과 힘을 합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여러 언론들은 일제히 ‘유시민 대권도전 강력 시사’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인터넷에서는 유시민의 ‘대권도전 시사’를 둘러싼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유시민의 어제 발언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정치인으로서 당내 사기를 높이기 위한 원론적인 발언일 수 있다. 그리고 국민참여당의 창당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의 짧은 발언에 주목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유시민이 대선도전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놓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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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전 장관 ⓒ 유성호

그렇지 않아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유시민은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지지율 2위에 올라섰다. 야권 주자 가운데는 선두이다. 물론 지지율이 10%대 초반에 불과해서 박근혜와의 격차는 현격하지만, 그래도 야권 내부에서는 대선주자 반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가 정식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다면 야권의 정치지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은 어제 발언을 통해 ‘유시민 대선후보론’에 불을 붙였다. 아마도 그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유시민 후보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 정당이 창당하는 과정에서 집권을 향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유시민 후보론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시민 대선후보론은 아직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유시민이 지향하는 가치나 정책에 특별히 동의할 수 없어서는 아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있으며 언제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유시민을 둘러싼 논란은 대부분 다른 영역에서 전개되어 왔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당시 김영춘 의원이 "유시민은 저토록 옳은 소리를 왜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했던 말은 그에게 오랜 낙인으로 자리해왔다.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를 갖추지 않고 공박하는 그의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었다.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껴안지 못하는 모습은 정치지도자로 도약하려는 정치인에게는 중대한 하자였다.

바로 이 점을 의식한 유시민도 적어도 장관이 된 이후에는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여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이전보다 덜 공격적이고 더 겸손한 모습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사람의 겉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노력하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 관한한 유시민도 이제는 낙인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유시민에게 있어서 정치적 성찰의 부재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누가 뭐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이다. ‘오른팔’ ‘정치적 경호실장’ 같은 속된 말들이 상징하듯이,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따라서 참여정부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는 핵심적 당사자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공’은 계승하되 ‘과’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서 겸허히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것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의 길로 내몬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의 것이며, 국민에 대한 책임있는 도리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가 그럴 필요성을 없애버린 것일까. 유시민은 그러한 과정을 건너뛴채 국민참여당에 입당했고 대선 얘기를 꺼냈다. 지금 이대로 다시 질주하려는듯한 분위기마저 읽혀진다.

그러나 과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서를 바탕으로 다음 대선으로 달려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니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추모’와 ‘대선’ 사이에는 참여정부 시기에 대한 ‘유시민의 성찰’이라는 중간다리가 빠져있다.

이러한 모습에서는 ‘노무현의 계승자’로서의 유시민은 발견되지만, 야권의 새로운 대선주자로서 홀로 서는 유시민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렇게 국민과의 사이에서 거쳐야할 과정을 건너뛴채 덜컥 대선후보 얘기로 논점이 가버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국민 앞에서 성찰의 시간도 좀 갖고 그러면서 인정받으면서 공감대도 넓히고, 그러면서 차차 대선 후보 얘기를 꺼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다.

유시민이나 국민참여당이나 그러한 과정없이 벌써부터 ‘유시민 대선후보론’을 꺼내는 것은 자칫 국민참여당은 ‘유시민 당’이라는 인식을 심화시킬 뿐이며, 이는 눈앞의 효과만 의식한 근시안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유시민이나 국민참여당이 대선에서 어떤 위치에 서느냐가 아니라, 앞으로의 중대한 국면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하도록 야권의 연대가 제대로 성사되느냐 여부이다. 그 과정에서 유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만을 넘어 폭넓은 층의 지지를 받게 되면, 그때 그의 대선도전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야권 내부가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기준으로 ‘민주당=비노’, ‘국민참여당=친노’ 식으로 갈리는 것은 분명 퇴행적인 현상이고, 과거 악순환의 반복이며, 야권의 분열이다. 야권 내부에서 ‘같음’을 이유로 연대하기 보다는 ‘다름’을 이유로 각을 세우는 모습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분열을 넘어설 수 있는 연대의 정신이 요구된다.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입당, 그리고 대선도전 시사가 야권 연대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아직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디 약이 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명박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국사회가 치유될 수 있도록,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의 지혜로운 행보를 주문한다. 유시민 대선후보론은 시간을 더 갖고 나중에 거론되어도 늦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