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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권노갑의 동교동계, 부활을 꿈꾸지 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셨던 동교동계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어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재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간의 화합 만찬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양측에서 90여명이 참석하여 과거의 일들을 얘기하며 그동안 있었던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동교동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는데,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전 고문이 동교동계를 대표하여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권노갑 전 고문이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다시 복귀한 모습이다. 아마도 어제의 집단회동은 동교동계 부활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동교동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지난 2002년 12월, 김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사실상 해체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동교동계라는 말이 나와서도 안되고, 동교동계의 모임이 있어서도 안되며, 이를 이용해도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를 계기로 동교동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해체선고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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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과 건배하는 권노갑 전 고문 ⓒ 남소연

그로부터 7년. 동교동계는 다시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다시 모인 동교동계는 결속력을 높여가는 행보를 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권노갑 전 고문,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의원 등 120여명이 차남 김홍업 전 의원과 함께 전남 신안군 하의도를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으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공개적인 단체행보를 하는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어제 회동에서도 그랬고 하의도 방문에서도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초청대상에서 빠진 사실이다. 동교동계는 박 의원이 초청대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동안 동교동계 내부에서 박지원 의원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겨온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동교동계 출신도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이 김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자기 멋대로 한다는 불신이었다. 그동안에는 김 전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때문에 어찌 못하다가, 이제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니 박지원 의원을 추방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보기 민망한 장면이다.

이렇게 동교동계는 적자와 서자를 가려가며 다시 결속을 다지고 있다. 그 결속의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민주당 주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공천권은 권노갑 전 고문이 행사하려 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그런가 하면 박지원 의원이 김홍업 전 의원을 위해 지역구를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가 동교동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민주당내에서는 동교동계의 영향력 강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민주당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할지 모르는 폭탄이다.

만약 들리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정치사의 물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다. 동교동계는 한 시대의 ‘공’과 ‘과’를 안고 이제 역사 속에서 그 수명을 다한 세력이다. 이제 와서 다시 동교동계를 일으키려 하거나 그 이름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과거회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교동계의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야권의 연대에도 치명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이 기득권에 매달려 야권연대를 위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한데, 민주당에서 동교동계가 다시 영향력을 갖는 집단으로 부상할 경우 다시 지역주의정당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에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동교동계가 지도자가 서거하자 다시 정치를 재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겁한 일이다. “동교동계 이름으로 정치활동을 하자말라”했던 김 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생각해도 그렇고, 야권의 내일을 생각해도 그렇고, 동교동계가 다시 우리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장면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대중의 동교동계'아닌 '권노갑의 동교동계'를 보고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