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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과의 대화'가 세바퀴는 아닌데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보다도 기대에 못미치는 <대통령과의 대화>였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야 국민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반대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국민들로서는 공허하게 끝나버린 두시간이었다.

나도 지난해 가을 KBS에서 주관한 <대통령과의 대화>에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적이 있기에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패널은 1분 질문하고 대통령은 5분 이상 답변하는 구조에서는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열띤 토론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대통령의 말에 대한 반론을 펴기가 어렵다보니 일방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버린다는 점, 예정된 주제를 벗어나는 ‘돌발질문’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 패널로 참석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본전을 챙기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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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이번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해서 뾰족한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통령만 길게 말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론을 펴기도 토론을 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과 패널이 불꽃튀는 토론을 벌이던 장면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성에 차지않는 진행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불가피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어제 MBC가 주관한 <대통령과의 대화>에는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동안 KBS와 SBS에서 두차례 비슷한 자리가 있었지만, 이번 MBC의 것이 가장 긴장도도 떨어지고 일방적인 홍보의 장으로 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근래 들어 갈등현안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대통령과의 대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문제를 지적해보자. 첫째, 패널구성의 문제가 있었다. 참석한 3인의 전문가 패널 가운데 김호기 교수만이 세종시 수정이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역시도 혼자서만 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반대여론을 전하는 것에 머물러야 했다.

어제의 패널구성은 KBS나 SBS 때보다도 뒷걸음질 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며 쓴소리 담긴 질문을 할 수 있는 패널의 비중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전문가 패널에서도, 시민패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둘째, 특히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얘기를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식이 되어버렸다. 세종시 문제야 어차피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관심사였으니까. 그 자체가 뉴스거리였다고 의미부여를 하자.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사업에 대해 ‘아무런 문제없다’는 대통령의 말만 길게 듣고 지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전문가 패널로서도 감당이 안되는 내용이었다면, 해당분야 전문가를 시민패널로라도 참여시켜 반론을 제시하며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문제를 거치면서 최소한 유지했어야 할 균형이 이미 무너져버리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급기야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몰리는 상황이 되어도, 연기군수가 “군수는 주민을 위한 대변인이기도 하지만 나라를 걱정해야 될 공직자의 임무도 가지고 있다”는 훈계를 들어도, 아무런 반론도 불가능한 자리가 되어버렸다.

셋째,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연예인 패널들의 출연이었다. 박현빈이 꺼낸 ‘김윤옥 여사의 요리’ 얘기며, 선우용녀가 꺼낸 ‘대통령의 내복’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함의 절정을 이루었다. 한때 <세바퀴>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는 풀어졌다. 자연스럽고 편한 분위기의 토론을 위해 방송사 측에서 연예인 패널을 참여시켰다는 것이 청와대의 사전설명이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으로 산적한 갈등현안들이 많은 상황임에도 대부분의 사안들을 언급조차 하지못한 자리에서, 너무 한가로운 방송이 되어버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넷째, 권재홍, 김경란 두 MC도 대통령을 위한 일방적인 방송에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맡았다. 미디어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선진화의 초석을 쌓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 등은 애초부터 대통령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듣고자 하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찍혀있던 MBC가 주눅이 들어서 알아선 긴 것일까. 이전에 있었던 두차례의 <대통령과의 대화> 때보다도 못한 방송이 되어버렸다. 듣자하니 이번 제작은 MBC의 보도제작국과 예능국이 함께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연예인들의 패널참여였는지는 모르지만, 굳이 이런 자리에 예능성을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작금의 상황이 한가로운 것 같지는 않다.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들은 것을 빼놓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 정말 대통령을 한번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 묻고 싶은 얘기의 대부분은 애당초 정해진 주제의 밖에 있었다.

대통령이 국민과 자주 대화를 갖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다. 우리가 그 자체를 마다할 정도로 대통령에게 각박하게 굴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기왕에 마련된 자리라면 진정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청와대도 그렇지만 MBC가 이 점에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대통령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굳이 피하고 싶은 질문들은 애당초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에게는 만족스러운, 그러나 시청자들에게는 공허한 두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