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엄기영 사장이 다른 경영진들과 함께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엄 사장의 갑작스러운 사표 제출에 MBC는 물론이고 방송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이 KBS에 입성한데 이어, MBC에서도 경영진이 교체되고 사장에 친정부적인 인사가 들어설 가능성 때문이다.
엄 사장은 어째서 갑자기 사표를 제출한 것일까. 현재 엄 사장이 함구하고 있어 그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로부터의 압박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초 뉴 MBC 플랜을 실시한 뒤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했던 엄 사장으로서는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묻지않을 수 없게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 이사회는 지난달 30일 엄 사장도 참석한 회의에서 뉴 MBC 플랜의 실패를 강조하며 MBC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한 바 있다. 또한 김우룡 이사장이 최근 엄 사장을 따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엄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동안 엄 사장 사퇴 문제를 거론하지 않던 방문진이 다시 MBC 경영진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했다면, KBS의 최근 상황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KBS에서 김인규 사장이 파업의 고비를 넘어서며 입성에 성공하자, 이제 남은 것은 MBC라는 정권 혹은 방문진 측의 판단이 있었을 법하다.
특히 방문진 입장에서는 유독 MBC에서만 가시적인 변화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대한 정치적 부담을 의식했을 수 있다. 이제 KBS도 안정된 마당에 MBC에 대한 외과적 수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방문진 측의 판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 이사회는 오늘(10일) 회의를 열고 제출된 사표의 수리여부를 논의한다고 한다. 현재 엄 사장의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 그리고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일부 본부장급의 사표만 수리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방문진이 MBC 노조 등의 반발이 따르더라도 이 기회에 새 사장을 들이는 쪽으로 결론내릴지, 아니면 무리를 하지 않고 보도관련 본부장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 길들이기 전략으로 나갈지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로 결론이 나든, 본질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것은 없어 보인다. 엄 사장을 퇴진시키고 친정부적인 새 사장을 임명하는 경우는 물론이지만, 설혹 엄 사장의 사표가 반려된다 해도 방문진의 섭정이 계속되는한 길들이기 방식을 통한 ‘MBC 장악’은 강도를 더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엄기영 사장은 재신임을 받아 유임되더라도 보도 쪽은 거세된 상황에서 방문진의 더 굴욕적인 섭정을 받아야 할 상황이 예견된다. 방문진의 재신임을 통한 유임은 엄 사장을 순치된 사장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엄 사장이 물러나든, 유임되든, MBC에 대한 통제의 본격화가 예고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엄기영 사장이 이끄는 MBC는 근래 들어 정권의 요구에 맞추어 상당히 순치된 모습을 보여왔다. 자의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표적이 되어왔던 <100분 토론>의 손석희 교수가 하차했고, 뉴스 프로그램은 이전보다 비판의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 KBS보다야 낫지만 MBC도 예전의 MBC는 아니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정도 갖고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방문진은 MBC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며 경영진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청와대와 이명박 정부가 MBC와 엄기영 사장을 얼마나 핍박해왔는지, 우리는 익히 “아는 바 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사표를 던진 엄기영 사장에 대한 압박이 방문진의 ‘단독 범행’이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 특보 출신의 인사가 KBS 사장에 임명되는 선례까지 만들어졌다. KBS는 이미 정권에 의해 장악되었고, MBC 또한 정권의 요구를 크게 거스르지는 못하는 정도까지는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배가 고픈가 보다. 김인규 사장이 KBS 입성에 성공하자마자 이제 MBC에 대한 대수술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고 폭식을 했을 때, 결국에는 뒷탈이 나게 됨을 이명박 정부는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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