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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현충일 태극기 게양, 자발적 애국심이 중요

지난 6.2 선거기간 동안 나는 곳곳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태극기를 흔드는 애국심으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해 주세요.” 광장에 모인 그 사람들은 소형 태극기를 함께 흔들며 자기 당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몹시 거북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그들이 흔들고 있는 저 태극기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저들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애국심을 유권자들 앞에서 ‘입증’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왜 하필이면 태극기를 들고 나왔을까. 마치 우리의 애국심이 조롱당하는 것 같은 거북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금도 애국심에 충만해 보이지 않는 의례적인 표정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태극기로 애국심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어디 선거유세장에서 뿐이었겠는가. 머리를 빡빡 깎고 학교를 다녀야 했던 우리 세대에게 태극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증표였다. 그 시절 우리는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웠다. 물론 그 순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다짐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맹세를 하는 우리의 얼굴은 언제나 무표정했고 가슴은 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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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남달리 애국심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자라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애국심만큼은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나라의 민주주의가 유린당하던 것을 목격하던 청춘시절,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민주주의를 되찾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민족분단이 낳은 대결과 반목의 상황을 겪으면서, 정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가슴 속으로 염원하며 청춘을 보냈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도 먹어, 나라걱정보다 자식들 걱정을 더 많이 하며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다시 후퇴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게 된다. 이 시대에 애국의 길이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조국의 현실 앞에서 여전히 분노하고 슬퍼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나대로의 애국심을 확인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면서 태극기에 집착하지 않았다. 나라의 상징이라는 태극기를 함부로 다룬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태극기 흔들기나 태극기 달기를 통해 애국심을 확인하는데 집착한 적은 없었다. 나의 애국심이 같은 날 일제히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는 국가의 요구에 따라야 입증될 수 있다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경일에 일부러 태극기를 안다는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꼭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 때 그때 나의 마음과 형편에 따라서 달기도 하고 안달기도 한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조국 광복과 국토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돌아가신 순국 선열과 전쟁 중 사망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다. 조국을 위해 숭고하게 가신 이들의 뜻을 기리는 날이다. 나 또한 오늘은 조국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예년의 현충일에 흔히 그랬듯이 태극기 게양 여부를 갖고 애국심을 측정하는 모습은 없었으면 한다.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이 집에 애국기를 달았는지를 조사해 가지고 그것을 밤시간 뉴스나 아침 신문에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것, 그런 유치한 줄세우기는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태극기 다는 것을 갖고 애국심을 판단하는 낡고 획일적인 문화도 이제는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애국의 방법이 저마다 다를 수 있듯이 추모의 방법도 다들 다를 수 있다. 꼭 태극기를 휘날려야 애국심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을 통해 나오는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가정에서는...” 소리를 듣다보니 며칠전 유세장을 지나다가 보았던 태극기가 떠올라,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현충일 아침, 조국을 위해 먼저 가신 이들의 명복을 빈다.


* 저의 인터넷 개인방송이 매일 밤 11시에 아프리카 TV를 통해 생방송됩니다. 다른 시간대에는 수시로 재방송이 나갑니다. 아프리카 TV 앱을 다운받으면 아이폰을 통해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유창선의 시사난타' 바로가기 http://afreeca.com/sisa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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