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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심상정의 결단, 우리 마음의 빚을 갚자

나는 경기도지사 선거의 투표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이다. 그런데 그동안 거리를 지나면서 선거벽보를 볼 때마다 착잡한 생각을 지울 수 없곤 했다. 나의 눈길이 유시민과 심상정 두 사람 사이를 오고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연대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왔던 사람이다. 야권이 하나로 힘을 합쳐야 선거를 승리를 거두어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주행을 심판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 사이의 후보단일화를 반겼고, 이제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유시민을 탐탁치않게 생각해왔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대의를 위해 그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거리에 붙어있는 심상정 후보의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곤했다. 심상정. 그녀는 지난 30년의 세월동안 오직 한길을 걸어왔던 사람이다. 심상정의 홈페이지에 올려져있는 자기소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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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 Ⓒ 남소현.권우성

“저는 지난 30년 동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나라와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위해 한 뼘,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앞장서 민주화 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자욱한 실밥 먼지와 기름 냄새 가시지 않은 구로공단에서 이 나라의 딸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해왔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는 하루 하루 배우고, 노력하는 가운데 국민의 대표로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내가 알기로, 하나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 역시,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청년시절부터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익히 들어왔던지라, 진보정치의 실현을 위한 그녀의 일관된 길을 존경어린 시선으로 줄곧 지켜보아왔다. 30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한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내가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선거벽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유시민을 향할수록 심상정에 대한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심상정같이 일관된 길을 걸어온 사람을 우리가 외면한다면, 그것은 과연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유시민으로의 단일화 이후 심상정의 지지율은 하락하였고, 그녀는 TV토론으로부터도 배제당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심상정은 외롭고도 어려운 처지에 내몰리고 있었다.

그것은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지난날 동시대를 살아왔던 한 사람으로서 껴안게 되는 ‘마음의 빚’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심상정이 경기도지사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로 했다. 야권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물러서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결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심상정이나 진보신당의 입장에서는 진보정당세력의 입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어려운 선택이다. 더구나 자신을 버려서 야권의 승리가 보장된다면 모르지만, 그조차도 선거가 끝나봐야 아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완주냐 사퇴냐를 고민하던 심상정은 사퇴의 결단을 내렸다. 자신을 던져 야권승리의 불씨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충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선거 때마다 야권연대를 위해 진보정당의 후보가 사퇴압박을 받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는 반문은 정당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그 질문에 대해 토론할 여유가 우리에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이제는 전쟁불사를 외치는 세력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상황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6.2선거에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승인해준다면, 우리 역사는 수십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야할지 모른다. 지금 이것을 막는 일은 다른 어떤 것에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과제이다. 내가 차마 겉으로는 꺼내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완전한 야권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마음 속으로 갈망했던 이유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신을 던진 심상정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녀는 선거벽보를 바라보며 마음의 빚을 느끼던 나를 풀어주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더 무거운 마음의 빚이 생겼다. 그녀가 보여준 살신성인의 모습에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62일날 가족의 손을 잡고 모두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것. 그리하여 그녀가 소망했던 대의가 실현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심상정에게 다시 지게 된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이 될 것이다. 심상정의 결단이 답답했던 선거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일대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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