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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명숙 소환보도 미스터리, ‘빨대’를 찾아라

한명숙 전 총리가 대한통운 곽영욱 전 사장으로부터 수만 달러를 받은 진술이 확보되었다는 <조선일보> 보도 이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한 전 총리는 돈을 받았다는 내용을 강력히 부인하며 <조선일보>를 상대로 반론 보도를 요청했다. 민주당과 친노진영은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져왔던 박연차 게이트 수사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데 대해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진영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 여부가 정국의 쟁점으로 급부상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와 검찰의 설명을 놓고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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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닷컴>에 올라온 기사

<조선일보>는 지난 4일자 1면 톱기사로 ‘한명숙 전 총리에 수만불 건네’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이 보도가 파문을 불러일으키며 검찰이 또 다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대두되자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검찰 수사와 관련된 최근 언론보도와 관련해 검찰에서 알리거나 흘린 바 없다‘고 밝혔다. “통상 진술이라고 하면 증거로서 가치가 있을 때 진술이라고 말하는데, 곽씨의 말은 진술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부 사실관계의 앞뒤가 맞지않아 더 보강조사를 해봐야 안다는 것이 서울중앙지검 측의 얘기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다음날인 5일자에 ‘한명숙 전 총리 내주 소환’ 제하의 기사를 다시 실어 “대한통운 비자금 조성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구속)으로부터 수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이르면 다음주 중에 소환조사할 것으로 4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는 곧 바로 소환조사를 기정사실화하는 후속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지켜보기에는 검찰보다도 <조선일보>의 보도가 더 앞서가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일까.

둘 중의 하나이다. 검찰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검찰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상황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선 <조선일보> 보도가 검찰에서 흘러나간 것이 아니라는 검찰의 설명은 거짓인가 진실인가. 만약 거짓이라면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흘린데 대한 정치적·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때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덮고 갔던 검찰로서는 악습을 재현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런데 검찰은 자기들로부터 흘러나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 보강조사가 필요한 수준이고, 진술 수준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검찰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면, 실제로 검찰에서 흘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사실 이 경우가 더 심각한 문제이다.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혐의를 벗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때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된다. 검찰의 수사상황이 검찰 외부를 통해 <조선일보>에 전해졌다면 ‘빨대’는 도대체 누구일까. 더구나 검찰은 보도내용을 부인하는 가운데 ‘소환방침’ 보도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검찰에서 흘린 것이 아니라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이외에 구체적인 수사상황과 소환방침까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우선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는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이 있겠지만, 이는 검찰 내부이다. 검찰에서 흘린 것이 아니라는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이들은 아니다.

이들 말고 수사상황을 알 수 있는 곳으로는 관련보고를 받았을 수 있는 법무장관, 청와대가 있겠고, 이를 전해들은 한나라당 쪽이 있을 수 있겠다. 만약 검찰 내부가 아닌 이 쪽으로부터 언론에 흘려진 것이라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이미 정권 차원에서 보고받고 조율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어찌보면 <조선일보> 보도는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효과를 노렸다고도 볼 수 있다. 여권 내의 어떤 세력과 <조선일보> 사이의 이심전심의 결과일 수 있다.

‘빨대’가 검찰 내부에 있다면 검찰이 자체적으로 색출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이다. ‘빨대’가 검찰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보다 힘센 곳에 있다면, 정권 차원의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검찰은 자신들이 흘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검찰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면 ‘빨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빨대’를 찾아라. 그 ‘빨대’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아낸다면 한명숙 전 총리 수사와 관련된 미스터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