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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촛불시위 2년, 내가 쓰는 ‘촛불 반성문’

이명박 대통령이 2년전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향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질책했습니다. 촛불시위 2년이 지났고.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성이 없으면 그 사회의 발전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반성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저도 반성할 것이 없는지 어제 하루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저야 촛불시위에 앞장서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년전 촛불시위에 공감하며 성원했던 한 사람이었던지라 반성할 것이 있다면 반성하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반성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당시 ‘괴담’으로 퍼졌던 많은 얘기들 가운데 사실과 다른 내용도 많았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정부의 졸속협상을 바로잡으라고, 그리하여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던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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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6일 촛불문화제 Ⓒ 유성호

정작 제가 반성할 것은 다른 곳에서 찾아졌습니다. 기왕에 이 대통령이 반성하라는 얘기를 꺼냈기에, 2년전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주장을 했었던가. 반성할 것을 찾기 위해 그 당시에 제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2008
617일에 제 블로그에 썼던 ‘촛불의 성취 훼손할 정권퇴진투쟁론’이라는 글에서 이런 주장을 했더군요.


... 정권퇴진투쟁은 현재로서는 국민의 동의가 결여된 상태이다. 쇠고기 협상 잘못한 것이야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하나 때문에 4개월도 안된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하는 데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쇠고기 문제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부 정책 일괄 반대투쟁으로 가고, 다시 정권퇴진투쟁으로 가는 것은 과거 운동권식의 관성적 투쟁이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열이 생겨나고 촛불은 왜소화되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2008년의 촛불집회가 거둔 위대한 성취는 상당 부분 훼손될지 모른다...

우리는 6월항쟁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이 경쟁하고 정권이 교체되는 룰이 확립된 것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선거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다...

잘못된 쇠고기 협상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에게 있고, 이를 바로잡을 책임도 이명박 정부에게 있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단계에서 ‘이명박 퇴진’을 전면에 내걸고 나서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당시 촛불시위대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정권퇴진론에 반대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68일에도 ‘촛불집회 끝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라는 글을 통해서도 이미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더군요. 당시의 분위기에서 이런 소리는 당연히 인기없는 얘기였고, 저의 글에는 많은 반박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2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리고 그 사이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주행이 갈데까지 갔다 해도, 이 소신이 기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여러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대안은 선거민주주의를 통한 정권교체일 수밖에 없음을 냉정히 직시한다면 당시 저의 견해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권퇴진을 요구하느냐 여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목소리가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정권퇴진 요구를 한다 해도 힘이 없어서 그것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은 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반성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 저의 생각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너무 신사적이지 않았던가 하는 점입니다. 쇠고기 협상 하나 잘못한 것만으로 들어선지 4개월 밖에 안된 정부를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이니까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그리고 평가는 더 일한 것을 보고 해도 늦지않다.... 이런 것이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저는 선거민주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처럼 신사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줄곧 주장하고 있는 보수-진보 사이의 페어플레이의 정신과도 맞물려있는 것이었습니다.

마후 촛불정국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가혹한 복수의 칼날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의 주역들을 골라내서 감옥으로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적 대학살의 막을 올렸습니다. 방송장악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미네르바를 구속시켰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었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공존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정부 인사들을 향한 표적 수사가 시작되었고, 정권의 코드와 맞지않는 인사들은 곳곳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정권의 눈에 거슬리는 전교조, 전공노 등도 전에 없는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많은 장병들을 희생시킨 천안함 침몰의 진상은 정부의 짜맞추기식 조사 논란 속에서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 민주주의 한다는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민주주의 역주행의 사례는 헤아릴 수조차 없어 여기서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여러 방송현장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할 기회를 주고 평가하자는 신사적 제안이 무색하게, 우리는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반성합니다, 저 자신이 너무 이명박 정부를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설마하니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대합의에 도전하겠는가 생각했던 것인데, 설마가 수많은 사람들을 잡고 있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좀더 철저하지 못했던 저의 안이한 생각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촛불정국이 끝나고 지금까지 2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우리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존립 자체가 심각히 위협받고 있습니다. 2년전에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던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약속은 간 곳이 없고, 그 대통령은 이제 우리더러 아직도 반성을 안하느냐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슴 속에서 눈물이 흐르려 합니다. 우리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지난날 국민이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힘을 모아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이렇게 파괴되고 있는 현실이 통탄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반성문을 썼습니다. 오늘과 같은 현실이 만들어진데 대해 저 역시 반성해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렇게 반성의 시간을 가질 계기를 제공해준 이명박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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